💌 협동의 다양성 스피커스 구독자분들은 협동, 연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떠신가요? 더불어 함께 잘해보자는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함께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나보다 우리를 강조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협동 안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가족 또는 이웃과 육아 품앗이로 아이를 번갈아 봐주거나 조깅을 하면서 함께 쓰레기를 줍는 협동도 있지만, 회사 동료와 점심 메뉴를 맞추고 서로의 취향을 배려하는 것처럼 이름 붙이기 어렵지만 일상 곳곳에 스며든 작은 협동의 씨앗도 있죠.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등 협동과 연대를 바탕으로 모두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사회연대경제기본법’ 제정이 논의돼 왔지만, 12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이 없다고 현장이 멈추지는 않죠. 현장의 실천이 먼저였기에 제도의 필요성도 이야기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번 스피커스는 협동과 호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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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4일 경기도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협동의 다양성: 역사, 조직, 그리고 사회연대경제의 미래’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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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경기도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협동의 다양성’ 학술대회는 협동조합의 역사적 다양성, 현장의 조직문화, 사회연대경제의 미래를 한 자리에서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데요, 한국학중앙연구원 ‘호혜·협동연구단’이 2018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연구 성과를 돌아보고 앞으로 10년의 방향을 함께 그려보는 자리이기도 했거든요. 연구단을 이끌어온 한국학중앙연구원 한도현 교수는 “저성장, 사회갈등, 양극화, 사회적 냉소가 깊어지는 한국 사회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진단하고 관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연구단을 꾸렸습니다. 그렇게 사회학, 인류학, 역사학 등 각 분야의 연구자 25명이 모여 조선시대 계(契)와 향촌 공동체부터 오늘날의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까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한국인은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가’를 추적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연구단은 2018년부터 매년 1천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회조사 데이터를 현재까지 8천명 규모로 쌓아 왔어요. 데이터를 통해 읽는 한국 사회의 변화는 흥미롭습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았죠. 연구단은 이를 ‘무해(無害)의 윤리’라는 개념으로 포착했는데요, ‘무해’를 강하게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낯선 타인에 대한 신뢰, 실제로 타인과 도움을 주고받는 정도가 모두 낮게 나타났다고요. 서로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려는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한도현 교수는 흥미로운 발견도 있다고 짚었습니다.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20% 미만이었다고요. 응답자 10명 중 8명 이상은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개인화가 심화된 사회이지만,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사회적 연대를 만드는 심리적 토대가 아직 살아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복합위기 앞에서 연구단은 이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호혜와 협동의 모습을 살펴보려 한다고요. 이날 학술대회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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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설립한 인도의 바랏 택시(Bharat Taxi) 협동조합은 승차호출 플랫폼을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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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은 19세기 영국과 독일에서 산업혁명의 충격에 맞서 탄생한 사회운동이자 제도입니다. 이후 협동조합은 자발적으로 퍼진 경우도 있지만, 식민지 지배 수단으로 이식되기도 하고, 신생 독립국의 경제개발 정책으로 보급되는 등 다양한 목표를 갖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협동조합이란 이름을 함께 쓰고 있지만,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자리 잡은 겁니다.
김형미 박사(전 상지대 교수)가 주목한 건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이 현재 협동조합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 협동조합의 역사, 전후 연합군 점령기의 영향을 받은 일본 농협의 구조, 독립 후 정부 주도로 성장한 인도의 협동조합 모델은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거든요. 다양한 협동조합 모델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역사적으로 추적할 때 협동조합의 의미는 더욱 흥미롭고 풍부해집니다.
그는 정부가 협동조합의 든든한 우군이 된 최근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지난해 인도에서 40만명의 택시 운전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한 택시협동조합 사례가 그것입니다. 바랏 택시 (Bharat Taxi)는 승차호출 플랫폼을 갖고 있어요. 플랫폼 구축과 유지에는 큰 비용이 듭니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500루피 출자로 의결권과 이익배당권을 가집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도의 전국협동조합개발공사와 같은 정부 기관과 세계 최대의 낙농협동조합 아물 (Amul), 농촌개발은행이 자본을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인도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택시 분야에 진입하는 게 아니라 협동조합이 주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김 박사는 이를 정부가 공인한 지위로 협동조합이 빠르게 시장 영향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봤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정부의 개입과 설계가 엿보이지만, 협동조합 운영에서는 ‘자치’라는 명분과 운영 구조를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요.
협동은 보편적인 인간의 본능이지만, 협동조합이라는 제도는 정치와 문화의 산물입니다. 다양한 협동조합의 모습은 왜곡일까요, 아니면 다양성일까요? 김 박사는 산업혁명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의 거대한 전환인 인공지능(AI) 혁명 앞에서, 인간의 새로운 응전으로서 협동의 제도나 사회운동이 새롭게 태동하거나 재구성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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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지난해 12월 기준 30만명을 넘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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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이라고 하면 공동의 가치 아래 사람들이 똘똘 뭉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데요. 막상 그 모여 있는 모습은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이상윤 성공회대 교수는 조직 내 다양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서로 다른 전문성과 경험을 뜻하는 ‘기능적 다양성’과 가치관이나 신념의 차이를 뜻하는 ‘가치 다양성’이 그것입니다. 흥미로운 건 두 다양성이 협동조합에서 정반대로 작용한다는 점이었어요. 기능적 다양성은 협동조합의 혁신과 민주적 성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전문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누가 무엇을 잘하는지가 분명해지니 불필요한 충돌보다 협업이 많아진다”는 거죠.
반면 가치 다양성은 달랐습니다. ‘협동조합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협동조합이 단순한 경제조직이 아니라 가치공동체이기 때문일까요? 흥미롭게도 서로 격려하고 역할을 나누는 공유 리더십이 있는 조직에서는 가치관 차이의 부정적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됩니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가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다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공식적으로 270만명,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3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앞으로 협동조합이 이러한 변화 속에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정체성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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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정부는 ‘제5차 협동조합 기본계획(2026~2028)’을 발표했다. 정부는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S.M.I.L.E” 5대 전략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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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못지않게 뜨거웠던 건 종합토론이었습니다. 협동조합 현장에서 오래 일해온 전문가들이다 보니 저마다의 자리에서 솔직한 진단을 내놨습니다.
두레생협 최민경 경영자문 이사는 그동안 정부의 협동조합 기본계획이 양적 성장에 집중하는 동안 협동조합의 철학이 희미해지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공공사업 수주 경쟁, 평가 중심의 운영, 시장에서의 생존 압박 속에서 협동조합이 일반 창업기업처럼 운영되거나 위탁사업 중심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최 이사는 사업실적뿐만 아니라 “관계와 참여, 신뢰, 그리고 공동의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며 협동과 호혜를 기반으로 한 사업 주체로서 협동조합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철식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여기서 협동이 때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위계적 관계를 재생산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협동이 과연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되는데요. 현실에서 협동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관계와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죠. 한편, 두레사회적협동조합의 강진희 이사장은 조직 간 협동이 오히려 더 어렵다는 현실을 짚었습니다. 강 이사장은 “호혜와 협동은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 일어나기 더 어렵다”며,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잘 안 되면 혼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업종별 연합회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남기포 농협대 교수는 협동조합을 ‘모자이크’라고 표현했습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남 교수에 따르면, 협동조합의 설립 목적은 생계의 향상에 있는데, 이는 크게 배고픔의 해결, 일자리의 확보,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입니다. 어느 협동조합이나 이 기본 목적을 공유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식과 모양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 교수는 “자조에서 시작해서 연대에서 끝나는 것이 협동조합의 시작과 끝”이라고 말했는데요. 이날 토론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처럼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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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구 결과를 정리한 <호혜와 협동> 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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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나고 그동안 연구단을 이끌어온 한도현 교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먼저 지난 9년간 25명의 연구자를 함께 묶어온 비결을 물었습니다. 한 교수는 2019년 벨기에 리에주 대학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사회적경제 연구로 잘 알려진 시빌 메르텐스(Sybille Mertens) 교수와 연구단 운영 방식을 이야기할 때 메르텐스 교수가 강한 어조로 “공동연구를 절대 하향식으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요.
통일된 결론을 강요하는 대신 서로의 사유가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고받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는 것, 그것이 9년을 유지해온 비결이었습니다. 외부 심사자들이 “연구자들 사이에 통일된 견해가 없다”고 지적했지만, 한 교수는 오히려 인문사회 연구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다고요. 25명이 함께하는 연구에서 단 하나의 통일된 이론틀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권위주의적이라는 것이죠.
그동안의 연구에서 기억에 남는 때가 있는지 묻자 2021년 국제회의에서 스페인 바스크 국립대학 교수가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의 핵심기업인 파고르(Fagor) 전자의 파산을 정면으로 분석한 비공개 논문을 발표했을 때를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이상적 모델로 소개된 몬드라곤 협동조합 내부 조합원들의 도덕적 해이, 파산 과정에서의 직원 재배치 문제 등을 낱낱이 짚은 내용이었다고요. 한 교수는 “그동안 아름답게만 소개된 몬드라곤의 병리적 측면을 정면으로 분석한 발표였다”며 “호혜와 협동을 다룰 때 그 빛만이 아니라 그늘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 준 자리였다”고 회고했습니다.
한도현 교수는 앞으로의 10년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전환기적 조건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플랫폼 경제와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 돌봄 위기와 지역소멸, 기후위기가 우리가 알던 사회적 관계의 결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고요. 이러한 조건에서 인간의 협동과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일이 향후 연구의 중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의 연구는 호혜와 협동의 의미를 더 넓은 조건에서 살펴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거죠. 기후위기와 성장의 한계, 사회적 혐오와 극단화 같은 단절의 조건 속에서 호혜와 협동이 어떻게 가능한지 따져보는 것입니다. 나아가 거대언어모델(LLM), AI 에이전트, AI 컴패니언, 로봇 등 비인간 행위자와 인간 사이에 호혜와 협동이 성립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질문이라고요. 그 관계에서 책임과 기여, 가치가 어떻게 배분될지도 함께 살펴볼 과제로 꼽았습니다.
한 교수는 “현실의 인간은 결코 독립적일 수 없으며, 끊임없이 누군가와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연구는 독립적 인간을 전제하는 접근이 아니라, 상호의존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접근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지난 9년의 연구와 앞으로의 연구가 갖는 의미가 이 말에 담겨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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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이번 학술대회의 핵심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협동과 호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지금 어디에 있고, 또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느냐란 물음입니다. 역사 속 계(契)와 두레에서 오늘날의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까지. 형태는 달라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는 방식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협동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을 지금 시대에 맞게 어떻게 조직하느냐가 숙제 아닐까요?
참. 다음 스피커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지나 6월 10일 찾아올 예정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다음 편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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