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 우리 모두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지역은 지방과는 다릅니다. 지방이 중앙과 대비되는 개념이라면, 지역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구체적인 삶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서울에 살고 있다면, 서울이라는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은 우리의 일터와 삶터로서의 물리적 공간을 넘어, 그곳을 함께 누리고 공유하는 이웃과의 관계망, 지역사회를 모두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사회가 겪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지역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올해 16회 아시아미래포럼 특별세션에서는 ‘지역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살펴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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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 지역민주주의 특별세션에 참석한 연사들이 함께 토론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좌장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김경수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민 뢰샹 루뱅가톨릭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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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은 개인의 삶터인 동시에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입니다. 지역과 지역 공동체는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뿌리이자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근본이 되는 지역이 충분한 자기 역량과 권한을 가질 때 비로소 민주주의도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 <민주주의 재건: 시민 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의 저자 찰스 테일러와 파트리지아 난츠는 “지역과 지역 공동체의 붕괴는 곧 민주주의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며, “지방자치, 참여 사회주의 등 공동체의 신뢰와 연대에 기반한 다양한 지역의 정치적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일까요? 시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가 어떻게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아시아미래포럼 특별세션 내용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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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이 오프닝, 발제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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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오이씨디(OECD)가 발표한 사회갈등지수에 따르면, 오이씨디 회원국 중 한국은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갈등 수준이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밖에도 이념, 계층, 세대, 젠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은 높은 갈등 수준을 보였습니다.
오프닝 미니 발제에 나선 김경수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은 한국 사회의 첨예한 갈등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며, 나아가 심각해지는 지역 불균형과 격차 또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역에서 이러한 사회 갈등이 낳은 차별과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역 주민들이 결속력을 다지고, 지역의 이익과 목표를 스스로 조정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정치적 효능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풀뿌리 자치’ 현실은 어떨까요? 우리나라 읍면동은 총 3551개입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주민참여와 소통을 통해 주민의 욕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읍면동 수준에서 주민자치센터를 만들고,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했습니다. 현재는 지역 간 편차가 있지만, 전국 약 1500개의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가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의 정책 결정 혹은 예산 집행 권한이 여전히 부족하고,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또한 저조해 ‘풀뿌리 민주주의 중심’으로 부르기엔 아쉬운 상황입니다.
이처럼 열악한 지역의 정치 거버넌스와는 대조적으로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다른 국가들보다 높은 편에 속합니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도를 보여주는 국내 정당 당원 수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약 500만명, 국민의힘은 약 450만명으로 오이씨디 회원국 평균의 5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김 위원장은 “국민들의 높은 정치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삶터 안에는 충분한 숙의와 토론의 공간이 없어 ‘일상의 정치’에서 멀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시민들의 높은 정치적 참여 욕구를 온라인 팬덤 공간에서 해소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고 사회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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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발제자인 마르잔 에사시 북미민주주의혁신연합 설립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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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사로 나선 마르잔 에사시 북미민주주의혁신연합(FIDE) 설립자는 지역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민의회’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미국이나 한국처럼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심한 국가에서, 시민의회는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해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시민의회는 국가나 지역사회의 주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인구 통계를 고려해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이 모여 깊이 있게 토론(숙의)하고 정책 권고안을 도출하는 심의기구입니다.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지금은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에사시 대표는 시민의회의 효과를 크게 세 가지로 꼽습니다. 첫째, 시민의회는 기후위기나 시민 안전 등 정부가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공공문제에 직면했을 때,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합의를 끌어내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민주적인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특정 계층이 아닌 다양한 시민을 골고루 대표하는 의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의회 참여자들이 특정 사회 아젠다를 깊이 학습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시민으로서 책임감과 연대감을 기를 수 있습니다.
에사시 대표가 속한 북미민주주의연합은 미국에서 시민의회와 숙의민주주의를 설계·운영하고, 교육 정책 실험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민의회가 경청과 공감 등 시민 개인의 역량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양극화를 줄이고 결속력과 연대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합니다. 정책적으로도 거버넌스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시민과 정당, 국회 간의 상호 신뢰 문화를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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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북미민주주의혁신연합이 주최한 시민학교에 참여한 시민들이 함께 강연을 듣고 있다. 민주주의혁신연합 누리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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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뢰샹 벨기에 루뱅가톨릭대 교수는 구체적인 해외 시민의회 사례를 들어 시민의회의 정치적 효과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선거제도와 같이 민감한 사회 제도를 바꾸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선거제도는 우리나라와 같이 ‘단순 다수제’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를 뽑는 방식이었습니다.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고 소수 정당이나 신진 정치세력의 국회 진출이 어렵다는 비판이 컸습니다. 이에 주 정부는 선거제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민의회를 통해 변화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2004년 인종, 남녀, 세대 등 다양성을 고려한 160명의 시민으로 첫 번째 시민의회가 꾸려졌습니다. 이들은 현 선거제도를 평가하고, 다른 선거제도를 함께 학습했습니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선 권고안을 마련해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2005년 5월 이 권고안으로 주민투표를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79개 지역구 중 77곳에서 과반 찬성을 얻는 놀라운 지지를 받았지만, 전체 통과 기준의 문턱(60%)을 넘지 못했습니다. 비록 제도는 바뀌지 않았지만, 이 실험은 전 세계에 숙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알린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성공 경험은 2016년, 더욱 진화된 형태인 시민의회로 이어집니다. 이 시민의회는 정치인을 배제하고, 연령·성별·사회계층·지역분포를 고려해 무작위 추첨한 보통의 시민 99명과 대법원, 정부에서 지명한 의장 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가장 민감한 주제였던 ‘낙태죄 폐지’를 포함해 기후위기 대응, 인구 고령화 등 국가 주요 의제를 다뤘습니다.
첨예한 갈등 사안도 시민들이 숙의하면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아일랜드는, 이제 시민의회를 준상설화된 민주주의 절차로 정착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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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아일랜드 시민의회 구성원들이 투표하는 모습. 아일랜드 시민의회 누리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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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신고리5, 6호기 공론화위원회’ 후원으로 열린 첫 토론회 ‘사회적 수용성을 갖는 신고리 5,6호기'에 참석한 청중들의 모습. 공론화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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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민의회 논의는 어디까지 왔을까요? 먼저 우리 곁의 ‘풀뿌리’를 살펴보면, ‘주민자치위원회’가 현재 전체 읍면동의 약 1/3에 해당하는 1500여 곳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 대표성을 반영하는 ‘추첨제’ 방식보다는, 여전히 이장·통장 등 지역 유지나 관변단체가 추천하여 선임하는 방식이 대다수예요.
물론 2017년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나 최근의 연금개혁 공론화위원처럼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해 추첨된 시민들이 참여하는 숙의 기구는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회성에 그쳤을 뿐, 시민의회처럼 상설화되거나 체계적인 제도로 자리 잡지는 못한 상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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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우리는 내년 6월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른바 ‘표심’이라고 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중요한 날이지요. 하지만 민주주의는 몇 년에 한 번 투표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번 아시아미래포럼 세션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하는 소통 창구가 필요합니다! 지역에서부터 시작되는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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