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온 명제이자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약속입니다. 개인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취를 이루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능력주의(Meritocracy)’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오늘 스피커스는 조금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려 해요. 능력주의는 정말 공정할까요?🤔
이번 스피커스에서는 지난달 열린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능력주의의 역설을 정리한 두 연구자의 논의를 따라가보려 합니다. 함께 살펴보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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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 교수,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과 교수, 대니얼 마코비츠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 조 리틀러 영국 골드스미스대 미디어학 교수. 백소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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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리틀러 영국 골드스미스대 교수는 능력주의와 신자유주의 문화정치를 열쇳말로 불평등이 대중문화와 담론 속에서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실천적으로 연구해온 학자입니다.
마코비츠 교수와 샌델 교수가 능력주의의 작동 방식을 사회경제적, 제도적 차원에서 분석했다면, 리틀러 교수는 대중문화·미디어·담론 분석을 통해 능력주의가 어떻게 우리 일상 언어와 감정, 자기계발 문화 속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코비츠 교수와 리틀러 교수는 지난달 23일, ‘민주주의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아시아미래포럼의 기조 연사로 참여했습니다. 불평등의 시대, 능력주의가 민주주의의 위기와 어떻게 맞물리며 작동하는지, 또 불평등은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주제로 강연했어요.
기조연설 이후에는 이철승 서강대 교수(사회학),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가 참여한 라운드테이블이 이어졌습니다. 미국, 영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등 각국에서 능력주의가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가는지에 대한 생생한 논의가 오갔습니다.
능력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 두 학자의 논의를 따라가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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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마코비츠 미국 예일대 로스쿨 법학 교수가 ‘능력주의의 함정:엘리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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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부와 출신이 아닌, 덕목과 재능을 기준으로 사회적 혜택을 분배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진보이자 혁신으로 간주되어 왔어요. 인종, 성별, 계급과 같은 고정된 집단 정체성보다는 개인의 다양한 성취를 중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가 과거와 다른 ‘자연스러운 귀족’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합니다. “기존의 귀족적 특권은 쇠퇴했지만, 능력과 부지런함으로 무장한 엘리트가 능력주의를 앞세워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능력주의는 폐쇄적인 귀족 엘리트와 달리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개방한다는 점과 유능하고 생산성 높은 엘리트를 배출해 이들이 공익에 부합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으로 여겨져 왔어요. 또한, 성·인종적으로 폐쇄적이었던 귀족 엘리트와 달리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해왔습니다. 예컨대,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은 1947년에야 첫 흑인 졸업생을 배출했고, 1973년까지 여성이 입학하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학생의 약 절반이 유색인·여성으로 구성됩니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룬 성취에 보상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가 ‘공정’을 내세워 엘리트가 기회를 독점하는 체제로 변질됐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의 능력주의는 기회 균등을 촉진하기보다 차단하는 체제로, ‘귀족주의 세습’을 대신하는 ‘능력주의적 세습’으로 엘리트가 특권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도록 돕는 사회적 기술이 됐다”고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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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비츠 교수가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 내세운 개념은 ‘능력주의 상속’이라는 개념입니다. 얼핏 상속과 능력은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상속이 출생 신분에 따라 부모의 지위를 물려받는 것이라면 능력은 개인의 노력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가 기회의 평등을 내세우지만, 현실은 이와 반대로 기회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오늘날 엘리트들은 자녀를 위해 최적의 훈련과 교육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자신들의 자녀들이 뛰어난 능력주의자가 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특권을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것입니다.
마코비츠 교수는 이를 구체적 수치로 제시합니다. 과거 귀족은 토지나 공장, 주식을 자녀에게 물려주었지만, 지금은 교육 투자라는 형태로 세습이 이뤄진다는 것이죠. 상위 1% 가정이 자녀 한 명에게 쏟는 투자를 상속 자산으로 환산하면, 미국 기준으로 약 1000만~1500만 달러에 이릅니다!
그 결과 미국의 아이비플러스 대학 (미국의 최상위 대학 그룹)에서 상위 1% 부모를 둔 학생의 비율은 하위 50% 가정 출신보다 수십 배 높습니다. 한국도 부모 경제력, 거주지 등 사회경제적 배경이 대학입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는 가난하지만 잠재력이 높은 지방 학생보다, 평범하지만 부유한 서울 학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더 많이 가진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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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의 함정을 ‘인적자원의 저주’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자원 저주’는 석유나 금 등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경제 발전이 정체되고 민주주의가 약화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마코비츠 교수는 이를 능력주의에 적용해 인재라는 자원이 초고학력, 초고소득층에 집중된 탓에 저성장과 정체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인적 자원 저주’가 작동하는 방식을 살펴볼까요? 일자리·소득·지위가 소수의 초고학력·초고숙련 노동자에게 집중되면서, 실업과 저성장에 시달리는 중산층·하층 노동자가 늘어납니다. 이에 엘리트는 자녀에게 더욱 집중적으로 교육 투자를 하고, 그들의 자녀는 명문대·최고 직업을 독점하는 방식으로 능력주의가 대물림됩니다. 그 결과 계급 고착화, 민주주의 약화, 경제 성장 둔화라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면서,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우월성’ 중심 사고를 ‘탁월성’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능력주의는 본질적으로 경쟁적이기에, 남보다 뛰어날 때 가치를 부여하며 그것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 탁월함은 가치 있는 일을 충분히 잘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기준이 되며 행위 자체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이어야 합니다. 예컨대 우월성은 ‘남과의 비교’와 ‘상대적 우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때로는 편법, 불법마저 동원하게 만듭니다. 반면 기업이 수익만을 좇아 환경을 등한시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창출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ESG), 윤리경영, 임직원·고객과의 신뢰 형성 등을 추구하는 것을 ‘탁월함’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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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리틀러 영국 골드스미스대 미디어학 교수가 ‘공정 담론의 역설, 민주주의를 위협하다’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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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리틀러 교수는 “능력주의적 담론은 개인의 성취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사회 구조적 제약을 은폐하고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근육으로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능력주의는 리얼리티 TV쇼나 성공한 기업가 서사를 통해 재생산되기도 하지만, <오징어 게임>이나 <헝거 게임>처럼 극단적 경쟁 체제를 비판하는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헝거 게임>의 “적이 누구인지 기억하라(Remember who the enemy is)”와 같은 메시지는 극단적 경쟁 체제와 계급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묘사합니다.
“열심히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는 패자에게 좌절과 모욕을 안기며 사회를 분열시킵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지위를 노력의 결과로 믿고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탓으로 실패했다는 낙인이 깊어지면서, 상호존중은 사라지고 혐오와 경멸이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리틀러 교수는 이를 ‘희생양 정치’로 설명합니다. 불평등을 야기하는 사회구조적 원인은 감추고 불만을 이민자, 빈곤층, 여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돌림으로써 사회적 분노가 축적되고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확대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진단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리틀러 교수는 ‘민주적 능력(democratic merit)’을 제시합니다. 사회에는 다양한 역할과 능력이 존재하기에 ‘능력’의 의미를 폭넓게 이해해야 하며, 교육은 부유층만의 특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초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등 보다 공정한 제도 설계를 통해 ‘민주적 능력’이 실현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리틀러 교수가 특히 강조한 것은 ‘돌봄(care)’의 가치입니다. “개인화된 연민이 아닌, 모두가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정치적 과정을 통해 돌봄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민주주의 재생산의 핵심이라는 것이죠. 돌봄은 서로의 삶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과정이며, 개인 경쟁에서 벗어나 공공의 책임을 지향합니다. “경쟁의 윤리를 넘어 돌봄의 윤리를 회복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과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고 리틀러 교수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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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능력주의와 불평등을 주제로 토론이 열리고 있다.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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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미래포럼 기조연설에 앞서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가 미리 전해준 발표문은 무려 100쪽에 이르렀어요. 그중 1/3은 한국의 현황을 담은 데이터로 빼곡했는데요. 마코비츠 교수의 성실한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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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이번 스피커스는 ‘능력’이라는 단어의 서늘한 뒷면을 살펴봤어요. 마코비츠 교수와 리틀러 교수의 진단은 결국 하나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차가운 능력주의 대신,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따뜻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나의 성취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님을 인정할 때, 그때 비로소 ‘세습된 공정’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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