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 ‘민주주의’란 말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들립니다. 마치 공기처럼 느껴지니까요. 어디에서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친구의 다른 의견에도 귀 기울이고, 자유롭게 선거에 참여하는 우리.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민주주의는 그렇게 강하지 않답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 당선 이후 일어난 일들을 떠올려보세요. 민주주의는 총을 든 군인들의 쿠데타로 더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선거로 뽑힌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왜 무너질까요? 법과 제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규범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10월23일 한겨레가 주최한 열여섯 번째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와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진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헌법과 법률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최소한의 존중, 권력의 한계를 지키는 자제, 합의를 향한 인내, 이런 무형의 규범들이 깨지는 순간, 민주주의가 흔들린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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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정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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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츠키 교수가 주목하는 개념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입니다. 상호 관용은 정치적 경쟁자를 적이 아닌 라이벌로 인정하는 것이고, 제도적 자제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문에 레비츠키 교수의 저서 구절이 나옵니다. 헌재 결정문은 “국회는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역사적 결정을 내린 심판의 주역이 바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입니다. 그는 27년 넘게 부산·경남에서만 재판을 맡아 온 ‘향판’ 출신이자, 2019년부터 헌법재판관, 2024년 10월부터는 권한대행으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을 이끌었습니다. 2025년 4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때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또박또박 말하던, 그 목소리의 힘이 아직도 귓가를 울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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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가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영상을 통해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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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법과 제도만으론 어림없다는 사실을, 레비츠키 교수는 아주 구체적인 예시로 증명해줍니다.
“1951년 이전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 임기제한 조항이 없었어요. 법적으로 평생 대통령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던 셈이죠. 그런데 거의 150년 동안 단 한 명의 대통령도 3선에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만든 선례를 토마스 제퍼슨, 앤드루 잭슨, 율리시스 그랜트처럼 야심 찬 대통령도 ‘여기서 멈추라’는 암묵적 규범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법이 아니라, 권력을 쥔 사람이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절제의 힘, 이것이 민주주의의 진짜 엔진입니다.
상호 관용은 조금 다릅니다. “상대가 내 정치적 반대편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적’이라 몰아붙이지 않고, 헌법과 규범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생각이 다르지만, 당신도 나만큼 이 사회의 일원이고 통치할 권리가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적이 아닌 라이벌로 존중하게 되죠.
두 규범 중 하나라도 깨지면, 정치는 곧바로 파국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상대를 적대시하면, 패배를 용납하지 못하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이겨야 한다는 ‘죽기 살기’ 식의 싸움으로 번집니다. 실제로 1930년대 유럽, 1960~70년대 남미에서 그런 파국적 치킨게임이 민주주의를 산산조각냈죠.
그래서 레비츠키 교수는 말합니다. 성문헌법에 적힌 대로만 산다고 민주주의가 아니라고요. 관용과 자제, 신뢰와 절제가 살아있을 때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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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고위직 공무원일 뿐이다”
문형배 전 권한대행의 이 단호한 문장으로 강연의 분위기가 단숨에 바뀝니다. 그 역시 민주주의의 본질을 관용과 자제로 설명합니다. “관용은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자제는 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절제입니다.” 법적 다수결만 내세우지 말고, 공론의 장에서 설득과 절충, 그리고 기다림을 중시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탄핵 결정문에서 “정부와 국회 사이의 대립은 일방의 책임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율되고 해소돼야 할 정치 문제”라는 문장을 가장 중요하게 다뤘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입니다.
탄핵 사태의 본질도 관용과 자제에서 찾았습니다. 정치로 풀 문제를 군대와 비상권력으로 해결하려 한 것, 즉 비상계엄 발표의 순간이야말로 민주주의 규범을 밟으면서 선을 넘어버렸다는 거죠. 야당을 싹 지워버리려는 계엄 선포는 관용을 포기한 행위이며, 헌법에 나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제를 잃고 권력을 남용한 사례라는 얘기입니다.
법원과 국회 모두에게 관용과 자제를 다시 생각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법개혁 논의에선 “법원은 개혁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주체이기에, 공론화 과정에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진짜 변화가 온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대법관 수 확대 문제도 “세계적으로 최고 법관이 1년에 3천건 넘게 처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개혁 요구에 반대만 하는 대법원의 태도는 모순’이라고 꼬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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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탄핵 결정으로 본 민주주의’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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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츠키 교수는 민주주의에 헌신하는 정당의 최소한의 원칙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 둘째는 정치적 폭력을 명확히 거부하는 자세, 셋째는 반민주주의 세력과의 결별입니다. 이 중 어느 하나만 무너져도 민주주의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공화당의 사례는 이 원칙의 붕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대통령이 됐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공화당 내 대다수 의원이 그의 입장을 따랐다는 점입니다. 공식 성명을 분석했더니, 공화당 의원의 86%가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구심을 표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레비츠키 교수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핵심 원인으로 꼽습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당들이 선거에서 패했을 때도 “이 패배가 당의 소멸이나 집단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신뢰가 공유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 공화당의 경우, 실존적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미국이 다인종 민주주의 사회로 급속히 전환하면서 기존의 권력 기반(백인 기독교인)이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죠. 1976년에는 미국인 80%가 백인 기독교도였지만, 2016년 트럼프 당선 당시엔 43%로 감소했습니다. 그들이 자기 집단의 지위 상실을 “파멸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결국, 민주주의의 지속은 질 줄 아는 정당, 경쟁자를 적이 아니라 이견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규범, 그리고 격렬한 정치적 갈등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룰을 지키는 신뢰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극단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마지노선을 지키는 힘이 바로 이 규범과 신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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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하버드대에서 만난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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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하버드대에서 레비츠키 교수를 만나 인터뷰할 때 상호관용과 자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 들어가 있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문 전 권한대행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영감 받아 결정문에 넣었다고 말하며, 고마움을 전해달라고 했거든요. 레비츠키 교수는 “처음 들었다, 정말 영광”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미국 상황을 걱정했습니다. “미국 민주주의가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권위주의로 미끄러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죠.
그때 제가 2024년 겨울, 비상계엄령 선언 직후 한국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장면을 보여줬습니다. 레비츠키 교수는 미국 학생들에게 한국 사례를 가르치며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범이라고 말하곤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구한 힘, 그건 따로 영웅이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 거리의 K-팝 청년들이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죠. 이게 바로 미국이 배워야 할 모습입니다.”
즉,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은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뛰쳐나와 행동하는 시민들의 연대임을 한국이 증명해줬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세계 어디에서든 닮고 싶어하는 한국 민주주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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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와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이야기는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헌법과 법률만이 아니라, ‘관용’과 ‘자제’라는 보이지 않는 규범의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민주주의의 ‘숨결’이라고나 할까요?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내셨나요?😊 스피커스는 이번호부터 다섯 번에 걸쳐 제16회 아시아미래포럼을 다룹니다. ‘민주주의의 미래’를 주제로 우리 사회의 과제를 함께 풀어갈 지혜를 모으는 자리였는데요. 민주주의를 흔드는 구조적 요인을 진단하고, 이를 되살리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한 이번 포럼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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