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배경아동·청소년 포럼 요즘 초등학생들은 운동선수, 연예인, 요리사, 크리에이터, 의사 등 저마다 반짝이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꿈꿀 수 있는 가장 큰 꿈이 100점이라면, 현재 내 꿈은 58점’이라고 말합니다. 또래 친구들만큼 좋아하는 일을 찾고 꿈을 위해 노력하기 어렵다는 것인데요. 한국 사회에서 자라나는 이주배경(다문화) 아동·청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올해 초·중·고교에 다니는 이주배경 학생은 처음으로 20만명을 넘었습니다. 이는 전체 학생의 4%에 달하는 수치로, 지난 10년간 2.5배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숫자와 달리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돌봄, 교육, 진로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과 마주하며 자신의 꿈을 조금씩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알아가기보다, ‘체류자격으로는 여기까지’라는 한계를 먼저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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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1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9회 서울시 외국인노동자 체육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창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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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배경주민은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귀화자 또는 부모 세대가 이주 경험이 있는 사람을 뜻하며, 북한이탈주민, 고려인, 난민 등 국경을 넘는 모든 경우를 포괄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며, 또 우리의 미래세대입니다. 이들에 대한 존중과 환영을 넘어 이들이 겪는 구체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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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 3층 페럼홀에서 열린 제5회 아동청소년복지포럼 <이주배경아동, 사회적 연결을 위한 6가지 시선>에서 발표 중인 기아대책 신소연 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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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언론에 보도된 이주배경 아동 관련 기사는 연평균 11%씩 증가할 만큼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관심의 대부분은 교육과 한국어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고요. 아이들의 실제 삶과 직결된 주거, 돌봄, 의료 등 더 근본적인 어려움은 충분히 조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아대책 이주배경사업팀의 신소연 팀장은 미디어 분석과 당사자의 경험,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이주배경 아동이 성장하며 맞닥뜨리는 핵심 장벽을 3가지로 정리했습니다.
- 돌봄의 장벽: 부모의 바쁜 생계 활동과 언어 문제로 아이들은 돌봄 체계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특히 미취학 아동은 의무교육이 아니다 보니 월 45~60만원에 달하는 어린이집 비용이 큰 부담이 됩니다. 때론 한국어가 서툰 부모를 대신해 자녀가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역돌봄’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요.
- 교육의 장벽: 언론에서 활발하게 다룬 분야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특히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중도입국’ 아동의 경우, 공교육에 들어가기 전 한국어 교육을 받은 비율이 20%가 채 되지 않아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고요. 기아대책에서 올해 7월 이주배경 청소년·청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0%가 “또래 친구들만큼 학교생활이나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답했어요. 주요 원인으로 한국어 환경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서(25%),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해서(24%) 등이 꼽혔습니다. 언어 적응에 실패하면 학습 격차가 벌어지고, 이는 배움의 기회를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이 됩니다.
- 진로의 장벽: 청년기에 접어들면 진로의 문은 더욱 좁아집니다.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언어와 적응 문제로 중도에 포기하거나 정체성 혼란과 낮은 자존감으로 대학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합니다. 언어 장벽 때문에 생계형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직업군이 한정적이라 아이들은 ‘가능한’ 꿈을 꾸며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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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한국 거주 10년차가 되는 김지영씨는 “혼자 은행 업무를 처리할 때마다 ‘내가 답답하게 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항상 따라온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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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과정에서 이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언어, 편견·차별, 사회관계의 문제입니다. 특히 편견과 차별은 나이가 들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고요.
포럼에 이주배경 당사자로 참여한 김지영씨는 정체성 문제의 복잡함을 이렇게 설명했어요. “내년이면 한국에 10년째 거주 중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너는 중국인인 거야, 아니면 한국인인 거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 항상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모호한 경계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채용 시장에서는 더 구체적인 편견이 존재합니다. ‘일자리에서 3개월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 혹은 ‘업무 숙지 속도가 느리다’는 등의 편견이 이들을 위축시킵니다. 김지영씨는 학교에서 유학생 대상으로 진행한 취업 상담에서 ‘어차피 한국 국적으로 귀화를 해도 한국인과 똑같지 않다’는 말을 들은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 속에서 많은 청년이 자신의 배경을 숨기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김지영씨는 “정체성에 관련된 지원책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주배경)청년들에게 물었을 때 한결같이 체념한 상태를 보였다”며 “공통적으로 한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우리는 여전히 외국인일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금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격려와 공감 같은 정서적 지지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가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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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열린 <이주배경아동, 사회적 연결을 위한 6가지 시선>의 종합토론은 김혜미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가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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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시급한 문제는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부재입니다. 신상록 함께하는다문화네트워크 이사장은 “현재 3만 명에 달하는 미등록 아동이 제도권 밖에 방치돼 있다”며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확대해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미등록 신분이라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교육과 건강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아동들이 있습니다.
이재호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 정책담당관은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과 글로벌콤팩트에 서명했지만, 미등록 아동 체류권 보장이나 아동 구금 금지에서 국제 기준에 못 미친다”고 지적했어요. 특히 “미등록 아동이 몇 명인지 정확한 데이터조차 없기 때문에 효과적인 정책 수립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한편, 김지영씨는 체류자격으로 인한 현실적 제약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어요. “D-2 유학생 비자를 취득하려면 대학에 가야 하고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휴학을 하면 해당 비자 연장이 더 이상 불가능해져 강제로 출국해야 한다”며 “개인 사정으로 인한 휴학도 예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재외동포(F-4) 비자로도 제한된 직종에서 시간제 취업만 가능하고, 쿠팡 배달 같은 일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어요. 이처럼 불안정한 체류 자격은 청년들의 꿈을 직접적으로 제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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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배경 아동들의 다양한 체류 자격. 사단법인 피난처 안지영 매니저 발표자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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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배경 아동·청소년 문제를 단순히 ‘이주배경’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어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들이 가진 복잡한 ‘체류자격’ 때문입니다. 사단법인 피난처의 안지영 매니저는 이주민이 가진 체류비자는 약 39가지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의 체류 자격은 대부분 부모를 따라 정해지며, 비자마다 보장되는 권리와 제약이 천차만별입니다. 부모의 비자 종류에 따라 아이가 할 수 있는 일,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달라집니다. 같은 이주배경 아동이지만 누군가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어떤 아동은 아예 신청조차 할 수 없는 거죠.
안지영 매니저가 소개한 사례를 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구체적인지 알 수 있어요. 인도적체류자 비자를 가진 ‘아라’라는 친구는 체육을 굉장히 잘해서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 대표 선수로 뛰었지만, 비자 문제로 국제대회나 지역대회에 나갈 수 없었어요. 비자 앞글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기회가 막힌 겁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은 법률의 보호 대상이 아닌 ‘정책의 대상’으로만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권오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저출생·고령화로 이주배경 인력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주배경을 가진 이들을 지원하고 정착을 돕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하기 어려운 일을 대신해달라’는 조건이 숨어있다”며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이주배경 청년도 하기 싫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권 부연구위원은 이들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부모의 출신이나 체류자격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죠. 단순히 사람을 데려오는 ‘유입’ 정책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통합’ 정책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져야 할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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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는데, 정책과 인식 변화는 여전히 더딥니다. 포럼에서 논의된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 사회적 지지체계 강화 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숙제입니다.
이주배경 당사자로 포럼에 참석한 김지영씨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크고 작은 무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또한, 현장에서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선생님들이 정책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죠. 이주배경아동 앞에 놓인 장벽을 없애고 차별 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넓히는 일이 아닐까요?
스피커스가 더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스리슬쩍 알려주기를 통해 생각을 나눠주세요. 소중하게 읽고, 천천히 고민하며 더 나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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