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활성화 기본법 논의
오늘은 저의 무지함을 고백하고 시작할게요. 예전의 저는 마을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주거지가 ‘00마을’임에도 제가 ‘마을’에 속해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죠. 어쩌면 마을에 대한 저의 기준이 너무 높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과 매일 인사 건네는 이웃, 어려운 일 생기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 함께 모여 돕는 그런 마을이요. 이상하리만치 유독 마을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이 있었고 그것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늘 부러워하고 희망하면서 현실에는 없다고 생각했던 마을이 바로 마을공동체더라구요. 곽현지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마을정책팀장은 “ 마을은 공동체였을 때 마을이다”라고 설명해요. 이 말을 듣자 왜 그동안 제가 그렇게 ‘마을’에 엄격한 기준을 댔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어요. 곽 팀장은 “ 주민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특정한 공간인 마을에서 서로 협력하며 생활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마을공동체는 생명을 얻는다”고 설명해요.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 제가 생각하던 마을이, 그러니까 마을공동체가 정말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제 삶의 터전 곳곳에 있더라고요. 이번 스피커스는 마을과 마을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왜 지금, 마을에 주목해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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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월 27일 방영된 한국방송공사 1텔레비전의 서울시 시장 후보 특별회견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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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제1회 동시지방선거(1995년)가 실시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87년 제9차 개헌을 통해 지방자치가 부활한 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 지 30년이나 되었다는 것이죠. 지방자치 30년은 마을 30년이란 의미이기도 해요. 국가와 행정의 사각지대에 마을이 들어서며 사회적 안전망을 지지하고 주민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지역사회를 활성화시켰거든요. 전국 217곳 지방자치단체에서 마을 조례(2023년 기준)를 제정하고 운영하는 이유도 마을공동체에 힘을 북돋워 지역에 활기를 더하기 위함일거예요. 하지만 상위법이 없어 주민 활동의 가치를 보호하기 어렵고, 주민 참여 정책이 한시적 혹은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죠.
이러한 필요성에서 2016년 ‘지역공동체 활성화 기본법안’이 마을공동체 가치를 지키고 지원하자는 내용으로 발의돼요. 이후 명칭과 내용이 조금씩 바뀌면서 4차례에 걸쳐 마을공동체 기본법이 발의되었어요. 하지만 번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되었죠.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박정현 의원 (더불어민주당)이 2025년 2월 ‘ 마을공동체 활성화 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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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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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5일 법안을 대표발의한 박정현 의원실 주최로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국회 역할과 과제’ 토론회가 열렸어요.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기후 위기로 발생한 이상기후 현상 △인구 감소로 가속화되는 지방 소멸 △산업구조 전환이 야기한 일자리 변화 등을 마을공동체가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해요. 에너지 전환, 빈집, 일자리 감소 등은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복합 위기이기에, 정부의 대응과 더불어 마을에서 스스로 필요성을 인지하고 해결방안을 제안해야 효율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죠. 서 대표는 마을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주민생활공동체’가 마을 특성을 고려한 해법을 찾아내는데 최적화돼 있다고 강조했어요. 특히 위기론에 휩싸인 민주주의와 마을공동체의 관련성을 언급하면서 “건강한 민주주의에서는 대면을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가 살아있어야 한다”며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생각과 의견을 나눠야 잘못된 정보가 자연스레 탈락하고 건설적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어요.
두 번째 발제자인 전대욱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마을공동체가 단순한 주민 참여를 넘어 사회적 편익과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는 중요한 단위라고 강조해요. 전 위원은 “마을공동체는 지역사회 문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국가와 지방정부의 부담을 줄이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며 “사회적경제나 주민자치와 연계되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주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죠. 더불어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마을공동체 조례를 운영하지만, 상위법이 없어 정책적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구요. 그래서 마을공동체가 단순한 임의단체가 아닌 법적·사회적 인정 체계를 통해 안정적 운영을 하기 위해 마을공동체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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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국회 역할과 과제’ 토론회 모습. 각지의 마을활동가들이 모여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잔치같은 분위기였다. 토론회는 박정현 의원실 주최,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협력, 마을법제화 추진 전국 TF·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대전공동체운동연합·한국마을연합 공동주관으로 진행했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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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찬 목원대 명예교수(행정정보학)는 마을공동체기본법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정부 간 협력적 거버넌스가 필수적이고, 특히 정치권의 지속적인 관심과 리더십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마을공동체기본법 제정뿐 아니라 정책적·정치적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는 거죠. 기본법이 제정되면 지역 특성에 맞는 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지역 발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 운용과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더불어 기후 위기 대응과 주거 문제, 빈곤 등 사회적 의제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마을공동체의 역할이 점차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토론자로 나선 조효경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상임대표는 최근 2~3년 사이 대전 지역의 여러 마을공동체 정책과 예산이 사라지고, 10여 년 넘게 활동하던 중간지원조직들이 연이어 폐쇄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마을공동체가 지속해서 활동하려면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아닌 국가 차원의 법률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고 합니다. 이는 마을활동가와 현장에서는 오래 누적된 고민이기도 해요. 특히 정책 기조가 바뀌면 예산이 없어지거나 중간지원조직이 갑자기 문을 닫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이런 현실에 공감하듯, 토론회 환영사에서 김영숙 한국마을연합 이사장(대구시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센터장)도 비슷한 우려를 표했어요. 김 이사장은 “2021년 민선 8기가 시작되면서 지방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입맛에 따라 마을공동체 조례를 폐지하고 마을공동체지원센터를 폐소했다”고 지적했어요. 그러면서 서울시와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대전광역시, 인천광역시, 세종특별시를 구체적 사례로 언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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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3.1운동을 기리기 위한 ‘머내만세운동’ 기념행사가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서 열린다. 33개 마을공동체가 만든 연합 조직인 ‘동천마을네트워크’가 이 기념행사를 2018년부터 주최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3월, 3.1운동 99주년을 맞아 열린 ‘머내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의 모습. 동천마을네트워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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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스스로 발전하고 있어요. ‘동천마을네트워크’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마을공동체 연합이에요. 무려 33개 마을공동체가 함께하는 이 네트워크는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연대로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걸어왔어요. 올해는 1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도 계획하고 있다고 해요. 이들은 마을장터, 마을여행, 마을학교 등 다양한 마을 사업과 프로젝트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어요.
네트워크의 첫 출발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였대요. 엄청난 사회적 충격을 함께 이겨내보고자 주민들과 몇몇 마을 단체들이 모이고 교류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해도두리 마을장터’가 처음 열렸고, 이후 꾸준히 이어져 주민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어요. 장터에서는 친환경 농산물과 수공예품 등을 사고팔고, 마을 동호회들이 다채로운 공연을 펼치기도 합니다.
동천동의 3월은 특별해요. 이맘때면 ‘머내만세운동’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죠. 이 행사는 마을 역사 지리 공부 모임 ‘머내여지도’의 활동이 쌓이고 모여 탄생했어요. ‘머내여지도’는 주민 인터뷰 등을 통해 동천동의 과거 지명인 ‘머내’의 유래와 병자호란 전투 현장 등 숨겨진 지역 역사를 발굴해왔습니다. 특히 의미 있는 성과는 1919년 3월 29일 동천동에서 있었던 ‘머내만세운동’의 기록을 찾아내고, 3·1운동에 참여한 주민 15명이 독립 유공자 표창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일이에요. 3·1운동 99주년이었던 2018년에 첫 행사를 개최한 이후,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머내만세운동’ 행사를 개최하며 지역의 역사적 자긍심을 이어가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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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에서 만든 ‘10대 위험 관리지역 지도’. 5개 재난·재해 유형을 구분해 위험 요소가 있는 곳이 표시돼 있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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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시 중서부에 있는 진건읍은 지난해 6월 ‘행복마을관리소 10대 위험 관리지역 지도(위험 지도)’를 만들었어요. 인구 2만여명, 면적 31.2㎢의 작은 마을인 진건읍은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시범사업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위험 지도에는 진건읍 주민자치센터를 중심으로 반경 1㎞ 권역에 있는 5개 마을의 △수해(폭우) △화재 △교통사고 △우범 △폭염(무더위 쉼터) 등 주요 위험 요소가 한눈에 파악되도록 표시돼 있어요.
이 지도를 만들기 위해 마을 주민과 활동가, 주민자치센터와 복지관 관계자 등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마을 위기 대응 협의체’를 먼저 구성했어요. 이들은 마을에 발생할 수 있는 재난·재해 유형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주요 위기와 위험 장소, 피해 가능성이 있는 주민을 예측하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이 과정에서 마을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피며 주민들이 누구인지, 누가 취약한지 다시금 인지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죠.
또한 협의체는 재난·재해 유형별 주요 대응 방법을 정리하고 구호 자원을 비치할 장소 등을 전략적으로 선정했어요. 지도 제작 과정에서 의용소방대, 교통봉사대, 이장협의회, 새마을부녀회 등 다양한 지역단체들이 참여하면서 마을의 공동 경험이 자연스레 축적된 것은 무형의 자산이 되었어요. 완성된 위험 지도는 주민단체와 경찰서, 소방서, 읍사무소 등과 공유되어 위험 지역과 구호 자원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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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동천마을네트워크와 진건읍 위험 지도 사례에서 보듯이 마을공동체는 사회적 자본을 능동적으로 쌓아가며, 지역 문제에 대응하는 핵심 주체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 마을공동체는 외부 충격과 변화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회복력과 자생력을 갖추며 성장해 나가죠. 중앙정부의 행정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다양한 문제에 마을공동체가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마을은 풀뿌리 민주주의 시작점이자 지방자치의 가장 기초적 단위입니다. 여러 위기가 혼재하는 2025년, 내 삶의 터전인 마을에서 이웃과 손을 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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