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콘텐츠 국제 컨퍼런스
바야흐로 ‘로컬=힙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입니다. 스피커스 구독자분들께선 ‘지역 특산물’하면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많은 분이 지역 농수산물을 생각하실 텐데요, 요즘엔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강원도 춘천엔 요즘 닭갈비만큼이나 인기 있는 ‘감자빵’이 있고, 한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이 붙어 팔렸던 전북 익산농협의 ‘생크림 찹쌀떡’은 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습니다.
지역상생을 앞세운 로컬 브랜드들이 곳곳에서 눈길을 끕니다. 로컬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다양성과 개성을 요구하는 탈산업화 사회에서는 기존의 대량 생산, 소비 방식은 작동하지 않죠. 세계화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고, 코로나19 이후 초연결 사회가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사람들은 가깝고, 친밀하고, 안전한 생활권을 찾고 있어요. 로컬이 주목받는 시대가 온 것이죠!😎
여기서 로컬은 중앙의 반대, 서울이 아닌 곳으로 보기보다는, 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각자의 기억과 추억으로 쌓은 경험 공동체가 만든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컬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를 넘어, 그 지역의 문화, 사람, 특성 등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네, 오늘 스피커스는 기회와 혁신의 장으로 한창 뜨거운 로컬 현장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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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열린 ‘로컬콘텐츠 국제 컨퍼런스: 로컬다이브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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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스는 지난 5월 28일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열린 ‘로컬콘텐츠 국제 컨퍼런스: 로컬다이브 2024’에 다녀왔어요. 로컬다이브(Local Dive)는 2021년 울산에서 처음 시작한 컨퍼런스로 이제 4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울산이 아닌 지역에서 컨퍼런스가 열리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해요.
로컬의 바다에 풍덩 빠진다(dive)는 의미로 로컬다이브를 이해했는데요, 여기엔 좀 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더라고요. 계명대학교 전충훈 교수는 다이브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해요.
- 지역의 문제는 물론 인적/물적 자원을 발견·발굴 혹은 축적한다는 측면에서의 디깅(digging)
- 디깅한 문제를 해결하고 자원을 재구성하는 혁신가의 육성(incubating)
- 액션의 지역 내 착근 및 확산(viral)
다이브의 목적은 지역 자원을 재구성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또 확산하는 것이라고요. 이를 위해선 기존의 사례를 잘 엮어내고, 또 다른 가능성과 기회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컨퍼런스가 그런 노력의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그럼 컨퍼런스의 내용, 함께 살펴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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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의부엌’ 사례를 발표 중인 김하원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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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은 지역경제의 핵심 주체로 역할합니다. 일반 창업과 로컬 창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로컬이 가진 고유한 자원과 특산물을 활용해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 시작점일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를 넘어 지역사회와의 협력,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로컬 창업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제주 ‘해녀의부엌’을 빼놓을 수 없죠.
뿔소라는 해녀들의 주 수입원입니다. 다른 해산물은 채취 가능 기간이 길어야 한두 달인데 뿔소라는 8개월 동안 채취할 수 있어 해녀들의 생계에 중요한 해산물이라고요. 하지만 전체 생산량의 80%가 일본에 수출되고 있어 일본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됩니다. 국내 판로도 마땅치 않아 소득 확보가 쉽지 않고요.
제주 구좌읍 종달리 해녀 집안 출신인 김하원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했어요. 김 대표는 해산물 판로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부모님과 동네 이모들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2019년, 종달리 부둣가의 방치된 창고에서 시멘트를 직접 바르며 공사하고, 버려진 어망과 태왁을 업사이클링해 꾸민 공간이 해녀의부엌의 시작입니다. 해녀 할망(할머니)의 이야기를 녹여낸 공연과 제주의 맛을 고급지게 표현한 메뉴가 어우러진, 눈과 입이 즐거운 식당이죠. 지난 5년간 97%의 예약률을 보이는 해녀의부엌은 이제 글로벌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해요.
김하원 대표는 도시와 다른 경쟁력이 로컬에 있다고 말해요. 오랜 시간 쌓여온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막상 제주에선 제주의 해녀문화나 해산물 요리의 가치와 의미를 높게 평가하진 않습니다.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그 가치를 놓치곤 하잖아요. 해녀의부엌을 통해 제주의 이야기와 음식이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이제 주민들이 찾아온다고 해요. 로컬브랜드가 되고 지역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상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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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생 등으로 지방소멸이 가속화되는 지금, 균형발전 이슈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처음으로 ‘지방시대 종합계획’ 5개년 계획이 발표되었고, 지역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제가 설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대구 북성로 메이커스의 모델을 만든 ‘훌라(HOOLA)’의 안진나 대표는 사업모델을 고민했던 초창기를 회상하며, 외부에서 사업의 주된 고객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 자신이라고 답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동네에서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사는 방식이 훌라를 하는 것이었다고요.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채워 넣는 것이 훌라였던 것이죠.
올해 2월 발간한 기획회의 601호에서 조희정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지금 로컬이 주목받는 건 로컬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지금 나의 삶이 중요해서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탐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고 향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형성되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로컬을 향한 관심도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의 로컬은 결국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요?
한편, 안진나 대표는 지역마다 안고 있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안 대표와 훌라 구성원들은 오래된 주택을 철거하고 새로운 아파트를 짓는 방식으로 획일화된 도시 개발의 문제를 훌라만의 방식으로 해결합니다. 개발이 아니라 ‘재생’으로 말이죠. 그렇게 훌라는 북성로 공구골목을 되살리기 위한 기술생태계 투어와 체험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고, 사라져가는 지역의 생활 이야기를 수집해 기록·보존하고 있습니다. 북성로 공구와 폐자원을 활용해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것 역시 훌라가 선택한 재생의 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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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북성로의 버려진 공구나 폐자원 등으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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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자원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통해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다 보면, 그렇게 만들어진 가치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타이완 주산의 소도시문화창의유한공사(小鎮文創股份有限公司)를 설립한 허페이준 (何培鈞) 대표는 “그동안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잘 정리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허페이준 대표는 지난 18년 동안 지역에서 쌓아온 경험을 배우려는 청년들에게 쉽게 답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해요. 그동안의 기록이 단편적이어서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유의미한 이야기 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판단의 근거가 되는 표준 지표(예: 유엔의 SDGs)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디지털화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규모 언어 모델(LLM) 등을 활용해 각 프로젝트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지역의 정보나 경험이 계속 지역에 남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합니다. 허페이준 대표는 창출한 가치를 측정하는 한편, 이를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획기적인 방법을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이는 로컬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확산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로 톡톡히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지역의 시그니처를 만들어 단단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이들의 성과를 숫자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량적 요소로만 평가된 로컬의 가치를 수치화해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로컬의 지속가능성을 입증하며 신뢰를 구축하고 다져가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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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로컬 크리에이티브 2024’ 전시회.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성심당의 튀김소보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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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대전 빵집 ‘성심당’ 서울 나들이…그런데 빵은 안 판다?’는 기사의 제목 앞부분만 읽고 성심당 빵을 드디어 서울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인가 설렜었는데 말이죠. 역시 성심당 빵은 대전에서만 살 수 있더라고요.😂 성심당을 비롯한 50여개 로컬 브랜드가 참여한 ‘로컬 크리에이티브 2024’ 전시회에서 모형으로 제작된 성심당의 시그니처 빵 ’튀소‘를 보며 성심당의 스토리를 읽어봅니다.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라는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모두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 EoC)’ 방식을 도입한 성심당은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가치 있는 기업으로 그 독특한 문화를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전에 와야만 만날 수 있는 빵집으로 유명한 성심당처럼 지역 곳곳에 우리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고, 고유한 지역의 음식점, 카페, 복합문화공간, 독립서점 등 일상의 터전을 구성하는 일이 활발합니다.
차별화된 경험을 요구되는 시대에, 로컬에선 유일무이한 경험의 원천을 찾을 수 있어요. 투자회사 어반데일벤처스 권혁태 대표는 시장에서 고객의 니즈가 변하고 있는 지금, “로컬의 미래는 밝다”고 말해요.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려 하지 않는 미래세대는 모두 똑같은 서울이 아닌 유일무이한 경험의 원천을 쌓는 로컬에서 기회를 찾을 것”이라고요. 이제는 서울이 아니라는 것이 기회가 됩니다. 구독자분들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 이번주 토요일(8일) 대전에서 ‘제1회 지방특별시 포럼’이 열립니다. 스피커스에서 살펴본 로컬의 맥락과 닮았지만, 또 다른 로컬의 현황을 두루 살펴보실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성심당 ‘빵지순례’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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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한쪽에서 낯선 모습이 스피커스에 포착됐어요! 컨퍼런스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이미지로 기록하는 작업이 그것이었는데요, 단순한 일러스트가 아니라 세션별 내용과 맥락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현장에서 라이브로 시각화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를 ‘그래픽 레코딩’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여러 아이디어의 중요한 키워드를 찾아 한 페이지에 그림과 글로 담아내는 것입니다. 4시간 반이 넘는 시간, 3개 세션에서 한국(대구, 제주, 공주), 일본(히로시마), 대만(주산)의 사례 발표와 토론이 각각 진행됐어요. 포럼에서 나온 논의를 실시간으로 한 장에 압축해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효과적일까요? 그것이 짜잔~ 이렇게 가능하더라고요. 현장의 활발했던 논의를 사진으로나마 다시 전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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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레코딩으로 기록한 로컬콘텐츠 국제 컨퍼런스. 계명대학교 글로벌창업대학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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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로컬을 채운 이들의 이야기를 곱씹어보니 ‘결핍’을 채우는 것부터 시작이더라고요. 대도시에서 혹은 로컬에서 지내며 느낀 나의 결핍, 지역주민의 결핍, 또 지역을 찾는 사람들의 결핍 말이죠. 로컬의 유일무이함이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지역과 사람에 집중했기에 결핍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진정성이 로컬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겠죠.💪
스피커스에 보내주신 의견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 스피커스에 대한 구독자분들의 생각도 나눠주세요. 정성껏 읽고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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