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정무역의 날 구독자분들께선 커피 한 잔으로 오늘의 시작을 알리진 않으셨나요? 커피는 이제 단순히 기호식품이 아닙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전 세계 평균 (152잔)의 두 배가 넘습니다. 하루에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셈입니다. 커피 시장 규모도 매년 급성장하고 있어요. 한국의 커피 시장 성장세에 주목한 유명 글로벌 커피 브랜드의 한국 진출도 늘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커피 시장도 매년 2~3%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커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거래되는 농산물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부가가치가 낮은 생두나 건조한 커피 등 미가공품을 수출하는 커피 생산국의 소규모 생산자의 소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커피 원두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공정무역 (Fairtrade)’이 시작됐습니다.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은 ‘세계 공정무역의 날 (World Fairtrade Day)’입니다. 이날은 공정무역을 널리 알리고 사람들의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 세계공정무역기구(WFTO)에서 지정한 기념일입니다. 매년 전 세계 70여개 국가의 400여개 공정무역 단체가 다양한 프로그램과 캠페인으로 공정무역을 알려왔어요. 올해 한국에서도 곳곳에서 공정무역을 기념하며 행사가 열렸습니다. 네, 이번 스피커스는 공정무역 이야길 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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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계 공정무역의 날’ 캠페인 슬로건인 ‘비즈니스 혁명 캠페인(#Business Revoultion Campaign)’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통해 우리 경제 및 사회 내 적극적인 변화를 옹호하고 포용적이며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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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은 원조 대신 거래를 통해 저개발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안적인 무역이자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외된 저개발국가의 생산자, 특히 소농에 주목한 공정무역은 생산자와 파트너십을 맺고 최저보장가격, 공동체발전기금 등 공정한 가격을 지불해 그들 스스로 사회적,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갖도록 합니다. 쉽게 말해, 제값을 주고 원재료를 사 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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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전통적인 설탕 제조 방법으로 만드는 마스코바도. 두레생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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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생협은 2004년, 일반 정제설탕을 대체할 수 있는 건강한 설탕에 대한 필요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필리핀의 비정제 설탕인 마스코바도를 수입합니다. 비정제인 마스코바도는 설탕이지만, 우리나라 식품법상 정제를 하지 않은 비정제당은 설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어요. 그래서 마스코바도에는 설탕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고 있지요.
<흑설탕이 아니라 마스코바도>의 저자인 엄은희 박사는 백설탕이 백미, 갈색설탕과 흑설탕이 누룽지라면 마스코바도는 현미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설탕으로 본 필리핀의 근현대사는 달콤하기보다 씁쓸하다고 이야기해요. 필리핀의 네그로스섬은 필리핀 최대의 원당 생산지로, 비옥한 네그로스섬에서 농민들은 사탕수수와 바나나 등을 경작하며 충분히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1920년대 원당 사업으로 이윤을 보려는 대지주들과 외국 자본가들이 네그로스섬 대부분을 사들여 사탕수수 생산지로 만들었지요. 그렇게 자기 땅을 잃은 노동자들은 한순간에 사탕수수 농장의 저임금 노동자가 되어 착취를 당합니다.
그러던 1980년대, 국제 원당 가격이 폭락하면서 외국 자본가들은 네그로스섬을 떠나기 시작했고, 폐허가 되어 버린 사탕수수 공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두 차례의 큰 태풍까지 겪은 이들에게 국제 구호단체의 도움의 손길이 있었지만, 그때 뿐이었습니다. 참다못한 농민들은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농민들이 똘똘 뭉쳐 대주주에 저항한 결과 토지개혁 정책으로 땅을 되찾을 수 있었죠. 그리고 자신들이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마스코바도로 공정무역을 시작했습니다.
두레생협은 마스코바도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제품을 단순한 수입품이 아니라 공정한 관계를 통해서, 소규모 생산자의 자립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공정무역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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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두레생협연합회에서 열린 기념 포럼 현장을 찾은 레이 테네프란시아 ATPI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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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생협은 공정무역에서 나아가 민중교역(People to People Trade)을 지향합니다. 이는 물건의 유통에 머무르지 않고, 국경을 넘는 만남의 장을 만든다는 것인데요. 생산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이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서로 돕는 호혜의 관계를 쌓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동안 두레생협은 얼굴이 보일 때,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와 배려가 싹틀 수 있다는 취지에서 249회의 다양한 활동과 교육을 펼쳤다고 해요. 그리고 생산자 공동체의 생산성 향상 및 지역사회 지원을 위한 기금 모금을 시작합니다. 이미 민중교역 과정에서 적정 금액이 생산자들에게 돌아갔지만 여기에 멈추지 않고, 생산자의 더 나은 삶과 지속가능한 생산 환경을 함께 모색한 것입니다.
이번 포럼 현장을 찾은 필리핀 APTI(Altertrade Philippines Inc.) 레이 테네프란시아 대표는 기금을 통해 소규모 생산자들이 경험한 변화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탕수수 운송 과정에 필요한 트럭을 구입해 인근 사탕수수 농장이 모두 혜택을 얻는다거나 관개를 위한 모터 펌프 등 생산 작업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농기구 구입으로 수익 창출에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레이 테네프란시아 대표는 그 무엇보다 두레생협 구성원들이 필리핀 네그로스 현장을 방문하는 경험이 현지 농민들에게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어요.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파트너십을 더 강화할 수 있었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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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팔레스타인 올리브유 생산지 현장 영상. 두레생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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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영토를 지키고, 팔레스타인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1986년 설립된 비영리단체인 UAWC는 주로 서안지구에서 활동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소규모 생산자들과 농업 기반시설을 지켜내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는 UAWC는 소규모 생산자를 위한 개발프로그램 및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최초로 토종 종자를 지키는 ‘종자은행’이 그것입니다. 90% 이상의 수자원을 이스라엘에 빼앗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UAWC는 빗물만으로 성장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토종 종자를 심고 지켜감으로써 생산자들이 농사짓는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죠.
구독자분들도 알고 계시듯, 2023년 10월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가자지구뿐만 아니라 서안지구에서도 물리적 공격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주민 대부분이 올리브 생산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서안지구 내에서 수자원 활용 통제는 물론 이동도 제한을 받고 있어 마음 편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랍니다. 두레생협은 생산자 파트너 단체인 UAWC와 온라인 연결로 생산지의 상황을 공유하는 한편, 걱정과 염려를 전하고 고립된 팔레스타인 생산자들에게 연대와 위로의 마음을 나누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올해 2월에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를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섰고, 그렇게 마련한 기금으로 식량, 식수, 텐트, 유아용 우유 등 생필품을 UAWC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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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2236곳의 도시가 ‘공정무역마을(Fair Trade Town)’ 인증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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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공정무역 제품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합니다. 그중 하나가 ‘공정무역 마을운동’입니다. 우리에게 공정무역 마을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하지만, 전 세계를 둘러보면 2000여개가 넘는 공정무역 마을이 활동 중입니다.
2000년, 노예무역으로 악명 높던 영국 랭커셔주의 가스탕(Garstang)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은 마을회의를 통해 세계 최초의 공정무역마을을 만들 것을 결의합니다. 그들은 지난 역사의 과오를 씻고, 더 공정한 무역을 위해 지역사회가 앞장선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그렇게 공정무역 마을운동이 시작됩니다. 이들은 공정무역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지역공동체(시민)-지역기업-지역미디어가 함께 공정무역위원회를 결성하고, 조례를 제정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제 공정무역마을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조례 제정, 언론을 통한 홍보 등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는 2017년, 인천시가 아시아에서 두 번째 ‘공정무역도시’가 되면서 공정무역 마을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됩니다. 2024년 3월 기준, 17개 도시가 공정무역도시로 인증을 받았는데, 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한국의 공정무역 역사는 이제 막 20년이 되어갑니다. 글로벌 흐름과 비교하면 짧은 역사죠. 공정무역 인지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공정무역 제품을 일상생활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공정무역마을은 지역사회의 공정무역단체, 종교단체, 생협 등 다양한 시민조직과 지방정부가 함께 만듭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공정무역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전 세계 공정무역 운동의 규모를 확대시킨 공정무역 마을운동이 한국의 공정무역 운동에도 큰 불씨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전국 곳곳에서 널리 퍼질 공정무역 마을을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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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은 착한 소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살짝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 해요. 가난한 생산자가 공정무역 네트워크에 연결되려면 생산자를 조직하는 사람과 조직이 필요합니다. 로메오 카팔라 의장은 필리핀의 파나이섬에서 활동하며 수십 년간 사탕수수 판매 금액의 상당수를 지주들에게 소작세로 빼앗겨야 했던 농민들과 함께 파나이공정무역센터(PFTC)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공정무역 조직들과 거래하며 농민들에게 좋은 일자리는 물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죠. 파나이공정무역센터는 농민의 자립을 지원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의 대형 댐 건설 등 사회 이슈에도 주도적으로 나서 약한 사람들을 대변했습니다. 그러니 지역의 엘리트들에겐 자기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로 여겨졌겠지요.
공정무역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대지주와 독점 자본에 대항해 농민의 존엄과 식량 주권을 지키려는 투쟁입니다. 공정무역 제품을 소비하는 것은 착한 소비를 넘어 구조적인 불평등과 폭력이 공존하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일지도요. 그래서 공정무역을 마냥 달콤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공정무역을 통한 생산자와의 연대와 교류는 일방적으로 돕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유·무형의 나눔으로 서로의 성장을 독려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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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소비는 이제 물건을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죠. 소비에 관한 우리의 선택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우리를 연결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정무역을 선택하는 것은 제3세계 생산자와 연결되는 한 방법일 수 있어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가치를 인식한 소비 실천과 참여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스피커스에 보내주신 의견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 스피커스에 대한 구독자분들의 생각도 나눠주세요. 정성껏 읽고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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