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회 사람과디지털포럼 |
책을 낸 뒤 교수님은 국방부 등 군·안보기관들로부터 강연 요청을 많이 받으셨대요. 그런데 강의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면 항상 받는 질문이 있었답니다. 대개 “우리 애가 ○살인데요… ”로 시작한답니다. “인공지능시대에 뭘 공부하라고 해야 하지요? ” 군인들도 계급 불문,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죠.
지난달 24일 열린 한겨레 사람과디지털포럼 오후 세션 ‘AI 시대, 학습의 미래’가 뜨거운 관심을 모은 배경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점심 뒤 감도는 나른한 분위기 같은 건 없었습니다. 네, 청중들은 같은 고민을 품고 있었습니다. 회계사·변호사 같은 자격증으로도 안심할 수 없는 세상. 어떤 능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한테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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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AI 시대, 일과 학습의 미래’를 주제로 제5회 사람과디지털포럼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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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열린 원탁토론 주제가 딱 이거였습니다. ‘전환의 현장_교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초대 소장이자 디지털인문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구본권 박사가 좌장을 맡았고요,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 박숙자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 박영민 카이스트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전임교원, 이범 교육평론가, 이수정 성신여고 교사가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 공부의 미래’ 저자 (구본권), ‘행복의 조건’을 강의하는 교육경제학자 (김희삼), ‘원조 1타 강사’ 출신 교육개혁론자 (이범), 읽기·쓰기를 가르치는 교수 (박숙자), 인공지능 리터러시를 가르치는 일반고 교사 (이수정)와 영재학교 교사 (박영민)가 둘러앉았으니, 얼마나 할 얘기가 많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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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도래한 교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혼란 속에서도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실험과 고민은 계속되고 있었죠.
“인공지능에 교육 과정 문서를 넣고 수업지도안 만들어줘, 학습지 만들어줘, 하면 뚝딱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업을 하고 평가하면 학생들한테 정말 도움이 되는가, 이런 부분에 대한 성찰이 많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그런 고민 속에 계속 몸으로 부딪히면서 수업과 평가 방식을 설계하고 있어요. 이제는 밑줄 치고 문법 설명하고 외우게 하는 시대는 지났죠. 영어 수업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할 경우 에이아이가 영작문에 피드백을 주는 것을 넘어서 온라인의 영어 게시문에 어떻게 게시물을 달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같은 디지털 소양을 담을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학생들에게 에이아이를 써야 하는 시점과 쓰면 안 되는 시점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어떤 부분에 에이아이를 썼고 왜 써야 하는지, 쓰고 나서 어떤 걸 느꼈는지도 돌아보게 합니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이 도와주면 안 되니까 정말 필요한 부분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죠.”(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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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 카이스트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전임교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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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아이가 척척 답을 내주는 편리한 시대에, 박영민 교사는 오히려 ‘불친절한 문제’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학교 교육은 굉장히 친절한 문제들을 주는 데 익숙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현실의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너무 힘들어해요. 약간 틀어진 현실을 마주하면 갑자기 멘붕이 오고 심각한 불안을 느끼는 걸 목격했어요.
어떤 연구에서 피실험자들이 실패를 경험하도록 설계했더니, 한번 실패를 맛본 이들은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결과가 나온 걸 본 적 있어요. 아이들이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것보다는, 불친절한 문제를 접할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이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박영민)
두 선생님의 실험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배움의 과정을 인공지능에게 통째 내주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대체해선 안 되는 인간의 능력은 무엇이며 그를 어떻게 배울 것인가 △인공지능에 압도당하지 않는 ‘온전한 나’로 사는 법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답을 내놓은 사람이 박숙자 교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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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에이아이는 유령입니다. 교실에 에이아이가 있는 것은 다 압니다만 없는 척을 하죠. (…) 학습자와 학습자, 학습자와 에이아이 이런 공동의 연결망을 만들면 어떨까요? 저는 사회적 모델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동안 인공지능은 개별적인 초개인화 학습의 도구로 활용했죠. 쓰는 사람은 더 잘 쓰고 개별적으로 유료 버전을 구매하는 방식으로요. 학생들에게 에이아이를 조원들과 함께 사용하도록 한 뒤 혼자 사용할 때랑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더니 90%가 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어요. 생성형 에이아이 결과를 조원들과 함께 읽으면서 거리를 뒀다는 겁니다. 인공지능 답변이 너무 뛰어나서 이전엔 비판적 검증이 어려웠는데 조원들과 머리를 맞대니 조금 가능해졌다고요. 또 프롬프트(명령문)를 조원들과 함께 쓰게 했더니 A4 한 페이지를 금방 채우더라고요. ‘인간이 이렇게 더 깊이 사고하고 프롬프트를 쓸 수 있구나!’ 이런 반응이 나왔습니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려면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합니다. 관계망 안에서 에이아이를 배치하고 학습 단계에서 ‘WITH’ ‘WITHOUT’ 선택이 필요합니다.”(박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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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 그렉 브록먼 부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슈퍼팩에 거액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확산한 챗지피티 불매 운동 ‘큇지피티’ 참여를 촉구하는 게시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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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자 교수의 한 학생은 ‘인공지능이 살상무기로 쓰이고 있다’는 이유로 적어도 기말 때까지는 생성형 에이아이를 안 쓰겠다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박 교수는 이렇게 말하죠.
“그 학생은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묻는 대신 AI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AI 리터러시’라고 하면 흔히 ‘AI 기술을 능숙하게 조작하는 능력’ 정도로만 언급됩니다. AI 리터러시가 기술적 활용 능력에만 머문다면 학습자를 기술의 소비자로 몰아세우는 거대한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사실 프롬프트 글쓰기 수업도 처음에는 그러한 우려 속에서 시작됩니다. 프롬프트 작성법을 배운 뒤 학생들의 첫 반응은 대개 탄성에 가깝습니다. ‘정교하게 프롬프트를 작성하니까 답변의 질이 확 달라진다’거나 ‘프롬프트가 AI의 탁월성을 끌어내는 핵심 변수 같다’며 신기해합니다. ‘쓸 만한’ 생성 결과가 온전히 AI 기술 덕분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프롬프트 글쓰기 수업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학생들은 프롬프트가 단순한 명령어 입력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 수업에서는 AI의 역할을 ‘피드백’과 ‘토론’ 정도로 한정하여 프롬프트를 구성합니다. 과제 특성을 고려해 소통 구조, 규칙, 절차의 항목을 넣고 짜다 보면 프롬프트는 금세 A4 한장 분량이 됩니다. 이쯤 되면 학생들은 자신이 단순히 AI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주체적으로 지식을 탐색하기 위한 ‘지식의 뼈대', 곧 비계를 세우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여기서 나아가 ‘가치’ 항목을 조원들과 논의해서 작성하는 순간, 프롬프트 쓰기의 의미는 다시 한번 전환됩니다. 여기서 가치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답을 받을까’라는 물음이 아닙니다.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허용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답을 좋은 답이라 부를 것인가’를 정하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약속이자, 교실 내부에 놓여 있던 윤리적 질서를 다시 한번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
AI는 단지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학습자의 사유를 외주화할 가능성, 학습자와 학습자 사이의 단절과 소외를 가속할 위험성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AI를 고립된 화면 속 도구로만 둘 것이 아니라, 학습자와 학습자가 함께 모여 앉은 책상 위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치열하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맡기지 않을 것인가. 어떤 답변을 좋은 답변이라고 부를 것인가. 어떤 표현과 태도를 허용하지 않을 것인가.”
박숙자 교수의 학생은 수업을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량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언어화하는 힘인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길러야 할 핵심 역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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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반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선 전 과목 시험이 서술형이었습니다. 국어 수업에선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거나, 과학 시간엔 배운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는 시험을 봤습니다. 배운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시험을 풀 수 있었고, 그래서 문제집보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고요.
이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가서 처음으로 객관식 시험을 치렀는데, 같은 학년인데도 이렇게 평가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 너무 놀랐습니다. 서술형 평가에 맞춰 공부한 것은 지금도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만, 객관식 내용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현행 한국 입시제도가 교육을 망친다는 말은 많이들 해왔습니다. 하지만 정답과 오답을 가려내는 평가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 시대는 사람에게 새로운 사회 제도의 설계를 요구합니다. 에이아이 시대에 적응하는 노력, 이것이 인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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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에이아이 시대, 인간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글자 하나라도 놓칠세라 밑줄 치며 달달 외우던 것에서 유령처럼 존재를 숨긴 에이아이와 마주 앉은 지금, 방식은 달라도 배움이 향하는 방향은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언어화하고, 자기 생각을 구성하는 힘이 그것입니다. 교실에서 에이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계하는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 아닐까요?
스피커스는 세 차례에 걸쳐 사람과디지털포럼을 톺아봤습니다. 어떠셨나요? 생각 함께 나눠주세요! 참, 스피커스는 다시 격주로 돌아갑니다. 그럼 7월의 마지막주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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