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회 사람과디지털포럼
‘모래시계 조직’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위아래는 볼록하고 가운데는 잘록한 그 모양 말이에요. 요즘 몇몇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하네요.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슈퍼 시니어’와, 에이아이(AI)에 능숙한 ‘슈퍼 주니어’의 자리는 견고해지는데, 정작 그 사이에 있는 중간관리자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해요.
오픈AI, 스타트업, 피지컬AI를 다루는 대기업, 정책 연구자 등 다양한 필드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AI와 함께 일의 구조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이날 좌장을 맡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렇게 문을 열었습니다.
“AI 에이전트 시대에 접어들면서 AI는 직업 전체를 증발시키기보다 직업 내부의 업무 단위를 쪼개고 재편하고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AI와 함께 일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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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AI 시대, 일과 학습의 미래’를 주제로 제5회 사람과디지털포럼이 열렸다. 정용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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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일의 변화는 구체적인 현장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어요. 현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수많은 뉴스나 자료들도 쏟아지고 있는데요.
예컨대 변호사 업무의 경우, 한때는 판례 검색이나 계약서 검토 같은 ‘단순 반복 업무’를 AI가 도와주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엔 문서 초안 작성, 법률 리서치, 컴플라이언스 점검 같은 핵심 실무 영역까지 활용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어쏘(연차가 낮은 소속 변호사)’로 불리는 저연차 변호사의 입지는 점점 축소되고, 오랜 경험이 쌓인 시니어 변호사의 역할은 더 확고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마다 변화의 양상과 속도는 다르지만, 포럼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던진 메시지는 ‘AI와 협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스피커스에서 소개할 라운드테이블의 주제도 바로 ‘전환의 현장_일터, 어떻게 AI와 함께 일할 수 있을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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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준 뱅크샐러드 디자인총괄이사(CDO)는 구글 출신으로 애플, 아우디, 소니 등 글로벌 브랜드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이끈 디자인 디렉터입니다.
그는 올봄 실리콘밸리 빅테크 현장을 둘러보고 한국으로 돌아온 근황을 전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귀국 이후에도 그는 오픈AI, 앤트로픽, 구글에 남아 있는 예전 동료들을 만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지금 자신이 몸담은 스타트업 현장에서 목격한 변화와 겹쳐 보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어요.
가장 먼저 꼽은 건 ‘직군 간 경계의 약화’입니다. 얼마 전, 분기별 전사 행사에 쓸 포토부스가 필요했는데, 브랜드경험 디자인팀의 주니어 디자이너 한 명이 “외부에서 장비를 렌트하지 말고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답니다. 생성형 AI인 ‘클로드(Claude)’의 AI 코딩 및 작업 자동화 에이전트인 클로드 코드(Claude Code)를 활용해 남는 아이패드 두 대로 실제 포토부스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시간! “외부에서 장비를 렌트하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야 했던 일을, 디자이너 한 명이 반나절 만에 대체하는 효과가 만들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압축된 속도’입니다. 홍 이사는 이를 단순히 “빨라졌다”는 말로 뭉뚱그리는 걸 경계했어요. “빨라서 놓치는 게 아니라, 많은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압축적으로 빨라진 것”이라는 뜻이죠. AI가 협업의 파트너로 존재하면서, 예전 직군별 협업 체계 위에 에이전틱 AI라는 파트너가 한 겹 더 올라간 셈이니 “협업의 복잡도 레이어가 몇 겹 더 쌓였다”는 게 그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해결해야 할 기업의 새로운 과제”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박영선 좌장이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구성원들이 AI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홍 이사는 웃으며 “일은 원래도 많았지만, 미국 빅테크에 비해 확실히 업무의 밀도가 높아졌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세 번째는 ‘품질의 새로운 기준선’입니다. “일상에서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서비스의 완성도를 80점이라고 하면, 그 정도 수준은 이제 AI가 빠르게 대체합니다. 예전에는 예산이 부족해서 전략적으로 넘겼던 마지막 20%의 품질, 이제 그 영역이 우리의 존재 이유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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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조직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박영선 좌장이 “AI와 협업하면서 조직 구성에 변화가 없었느냐”고 묻자, 홍 이사는 스타트업 특유의 업무 방식을 짚었습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달리 1~2주 단위 ‘스프린트’로 계속 서비스를 만들고 피봇(방향 전환)하며 반복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서 업무를 분배하고 이메일을 포워딩하며 확인과 대응을 요청하던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점점 필요 없어지고 있다고요. 반면 주니어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AI 활용도도 높아 더 빠르게 적응하고 성과를 내면서, 관리 업무만 담당하던 중간관리자들이 상대적으로 ‘회사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존재’가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앞서 말한 ‘모래시계 조직’의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중간관리자는 이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 이사는 노련한 시니어와 AI를 다루는 데 능숙한 주니어, 이른바 ‘슈퍼 시니어’와 ‘슈퍼 주니어’가 협업하는 관계로 재편되는 만큼,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이에서 자기 역할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실무 역량을 끊임없이 배양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관리 업무에만 시간을 쓰다 보면 정작 실무에 직접 참여하는 시간이 줄어 역량이 점점 옅어집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실무 참여 시간을 확보하거나 업무 시간 외에라도 직접 툴을 써보며 ‘안목을 기르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는 메타(Meta)에서 일하는 지인의 말도 전했는데요. “시니어 디렉터급 리더들이 관리 업무만 하던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실무자 레벨로 전환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고요. 관리하던 사람이 다시 직접 일하는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인간의 자리로 남을 업무는 무엇일까요? 홍 이사의 답은 분명합니다.
“시작과 끝은 인간입니다. 어떤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정의하는 게 시작이고, 여러 결과물 중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게 끝입니다. 중간 과정은 점진적으로 AI가 채워가겠지만,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것은 결국 인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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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만 포스코홀딩스 AI로봇융합연구소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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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만 포스코홀딩스 AI로봇융합연구소 연구위원은 1997년 포스코에 입사해 자동화·제어 분야를 거쳐 2020년부터 AI 업무를 맡아온 29년차 엔지니어입니다. “제조업의 미래는 사람이 없는 공장이 되는 거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그의 답은 명료했습니다.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역할이 바뀌는 과정입니다.”
피지컬AI가 제조 공장에서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높지만, 포스코는 인력 부족과 고령화, 숙련 인력의 퇴직, 지방 제조 현장의 구인난 때문에 오히려 AI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요. 포스코는 2016년부터 스마트팩토리를 추진하며 용광로 조업을 돕는 AI, 1500°C의 쇳물을 나르는 기관차의 자율주행, 고온·유독가스 지역을 순찰하는 사족보행 로봇 등을 도입해왔습니다.
이덕만 연구위원은 2022년 태풍 힌남노가 제철소를 덮쳤던 당시, 공장이 1.8m 높이로 물에 잠기면서 전력과 IT 인프라가 모두 멈췄을 때를 이야기했습니다. “자동화 시스템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처리하고, 핵심적인 판단도 사람이 할 수밖에 없었어요.”
예상을 벗어나는 상황, 데이터가 없는 재난 상황에서는 AI도 로봇도 무력하다는 걸 몸으로 겪은 겁니다. “최후의 안전망은 결국 사람”이라는 게 그가 내린 결론입니다.
포스코는 요즘 퇴직을 앞둔 숙련자들의 노하우, 이른바 ‘암묵지’를 영상과 인터뷰로 기록해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요. 이덕만 연구위원이 꼽은 ‘좋은 AI’의 정의도 곱씹어볼 만합니다.
“좋은 AI란 사람과 협업해서 인간의 역량을 증강시킬 수 있는 A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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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태풍 힌남노로 공장이 셧다운 된 포항제철소 공장에서 복구 과정을 거쳐 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모습. 위기일수록 AI가 아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판단과 대처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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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위임할 일, 함께할 일, 사람만 할 일을 구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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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AI기업의 고위 임원이 경험하는 일의 변화는 어떤 것일까요? 음성원 오픈AI 코리아 커뮤니케이션 총괄은 AI가 챗봇에서 에이전트로 진화하며 업무가 세 갈래로 나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 AI에 위임하는 업무: 자료 탐색·분류·자동화, 반복적인 정보 처리, 요약과 초안 작성
- AI와 함께하는 업무: 분석과 대안 비교, 아이디어 검증 등 AI를 ‘씽킹 파트너’ 삼아 진행
- 온전히 사람 몫인 업무: 문제 설정과 목표 정의, 윤리적 판단, 협업, 최종 책임
그는 자신의 업무 변화를 직접 예로 들며 설명했습니다. “오늘 발표한 PT를 만드는 데 원래는 3~4시간 이상 걸렸을 텐데, 에이전트로 자료 수집과 디자인을 한꺼번에 처리하다 보니 30분 만에 끝났습니다. 반복적인 업무의 양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더 상위 차원의 전략적 고민을 하게 됐어요.”
다만 그는 이런 변화가 새로운 고민도 낳는다고 짚었습니다. 반복 업무가 줄면서 신입과 주니어 직원들이 숙련도를 쌓아 나갈 경로 자체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에는 신입 엔지니어가 도제식으로 배우며 경력을 쌓아 숙련자가 됐는데, 이제는 갑자기 신입 엔지니어가 AI를 활용해 자신과 같은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으며 곧바로 경쟁자가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는 거죠.
음성원 총괄은 이런 전환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강조하며 오픈AI가 운영하는 ‘ 오픈AI 아카데미’를 소개했습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갖추도록 돕는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인데요. AI 활용 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제공하고, 인증 제도를 통해 역량을 검증하며, 이렇게 검증된 AI 인재와 이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을 연결하는 매칭 플랫폼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환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미루지 말고, 기업과 사회, 정부가 함께 지원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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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현장의 생생한 고민과 변화를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유재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의 이야기를 소개해볼까 해요.
유재연 분과장은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양대 겸임 교수이자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을 맡고 있어요.
그는 “일터에서 우리는 어떤 이유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AI를 조직 내 관계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이렇습니다. 조직의 의사결정자 입장에서 보면 재무제표상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것은 결국 인건비입니다. AI를 잘 쓰는 사람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아직 조직과 깊은 신뢰 관계를 쌓지 못한 청년이나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점점 꺼려지게 되죠. 그는 이것이 지금 청년 고용의 벽을 높이는 배경이라고 짚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조직이 성장하려면 결국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사람은 조직 안에서 2가 아니라 10의 생산성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AI가 더해지면 100의 생산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시너지가 더 정교하게 재설정돼야 해요.” 이를 위해 AI 비용을 낮춰 더 많은 사람이 AI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협업 자체에 대한 새로운 평가 기준(KPI)을 설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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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좌장을 맡아 토론을 이끈 박영선 전 장관은 앵커 출신답게 매끄럽고 뛰어난 진행으로 현장을 압도했어요. 그는 이 분야에서 이론과 현장을 모두 잘 아는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특히 반도체에 대해서는 여러 저서도 냈어요.
반도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88년 MBC 경제부 기자 시절,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D램을 발표한 것을 취재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4선 국회의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을 거친 후 2021년에는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반도체와 AI 정책을 연구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반도체 주권국가’, ‘AI, 신들의 전쟁’ 등의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AI 시대를 개척하고 선두에 서 있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인간의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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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AI가 일터의 구조를 바꾸고 업무 속도를 압축하는 시대에도 문제를 정의하고 최후의 안전망이 되어주는 것은 결국 ‘사람의 역할’에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스피커스는 일터의 변화만큼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한 ‘학습의 미래’를 다룬 사람과디지털포럼의 3번째 라운드테이블을 다룰 예정입니다. 급변하는 AI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며, 미래의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논의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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