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정부 청년들의 기록 실험, 마을데이터 동네를 바라보는 방법을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누군가는 주소와 지번으로 바라보고, 누군가는 개발 계획이나 통계표로 살핍니다. 사람마다 동네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같은 공간이라도 해석은 달라집니다.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꽃동네’의 청년들은 조금 다른 데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골목에 놓인 노란 고추장 통, 덧칠이 벗겨진 벽면, 오래 햇볕을 받아 빛이 바랜 외벽, 폐업한 지 한참인데도 자리를 지키는 낡은 간판 같은 것들이었죠.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이를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위치를 기록했습니다. 색을 수치로 옮기고 저마다 이름도 붙였어요. 그러자 평범한 골목 풍경은 막연한 인상을 넘어, 함께 모으고 나눌 수 있는 마을의 자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
|
|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꽃동네’ 일대 모습. 2024년 9월 ‘프로젝트 산장’ 등 의정부 청년들이 진행한 ‘빛바랜 꽃동네 연구소’에서 마을의 ‘색’을 기록하기 위해 촬영한 사진들. 프로젝트 산장 제공. |
|
|
의정부시 금오동 하금로와 거북로 일대. ‘꽃동네’라 불리는 이곳은 오랜 시간을 지나온 자연부락입니다. 한때는 이웃끼리 서로의 살림살이를 훤히 알 만큼 촘촘한 공동체였고, 마을 축제도 열리던 곳이라고 하죠. 그런데 2011년 미군 기지가 철수한 뒤부터 동네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뉴타운 지정과 해제, 재개발 추진과 표류가 반복됐고 그 사이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마을에 상처를 남긴 건 변화 그 자체라기보다, 그 변화가 오랫동안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미뤄졌다는 점이었을 겁니다.
동네가 곧 바뀔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집수리나 간판 정비 같은 작은 손질부터 뒤로 밀리게 되죠. 어차피 머지않아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 손보는 일부터 망설여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는 사이 건물 외벽의 칠은 벗겨지고, 문을 닫은 가게의 간판은 그대로 남습니다. 재개발을 둘러싼 찬반과 피로가 길게 이어지면서, 한때 단단했던 공동체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 됐습니다. 꽃동네의 골목에는 그렇게 ‘고쳐지지 못한 시간’이 남아 갔습니다.
보통 이런 풍경은 행정의 언어로 먼저 읽힙니다. 노후도, 정비 필요성, 사업성 같은 기준이 앞에 서죠. 하지만 의정부 청년 기획자 연합 ‘ 프로젝트 산장’을 비롯해 ‘ 스무살이 협동조합’, ‘ 아트볼 프로젝트’, ‘ 로컬피스’ 등 지역 청년들은 이 풍경을 다르게 읽었습니다. 행정이 매긴 수치만으로는 이 동네를 다 설명할 수 없다고 본 겁니다. 대신 청년들은 빛바랜 외벽의 색, 손때가 밴 골목의 표면, 폐업 뒤에도 남아 있는 간판 같은 것들에 눈을 돌렸습니다.
청년들에게 꽃동네는 그저 낡은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관심이 끊긴 장소는 조용히 지워지기 쉽다는 걸 알기에, 지금 남아 있는 흔적을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본 거죠. 꽃동네를 다시 읽는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청년들이 들여다본 건 단순한 낡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이었습니다.
|
|
|
①②③ 2024년 9월 ‘빛바랜 꽃동네 연구소’에 참여한 청년들이 골목길을 경계로 마을을 6개 구역으로 나눈 뒤, 꽃동네의 시간이 묻어 있는 사물과 외벽을 관찰 대상으로 정하고 촬영했다. 오전 11시와 오후 4시 두 차례 촬영한 것은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햇빛의 양과 색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서다. ④ 유윤하 씨에게 영감을 준 노란 고추장 통. 프로젝트 산장 제공. |
|
|
꽃동네를 다시 읽는 작업은 유윤하 기획자가 골목에서 발견한 노란 고추장 통 하나에서 시작됐습니다. 2024년 봄, 회의 장소로 가던 길에 눈에 들어온 그 통은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색을 띠고 있었죠. 선명한 노랑이 아니라, 오래 바래고 먼지를 머금은 노랑이었습니다. 윤하씨는 그 색에서 꽃동네의 시간을 읽었습니다.
그 발견은 곧 청년들이 꽃동네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청년들은 벽과 대문, 골목 곳곳의 사물에 남은 색에서 이 동네가 지나온 시간을 읽었습니다. 새로 칠한 선명한 색이 아니라, 바래고 덧칠되고 닳으며 남은 흔적에 주목한 겁니다. 그냥 “낡았다”고 지나치면 사라질 풍경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이 동네만의 표정이 남아 있다고 본 거죠. 그래서 청년들은 마을의 색을 직접 채집해보기로 했습니다.
청년들은 생활권에 따라 형성된 6개의 골목을 기준으로 구역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외벽과 사물, 골목 곳곳을 관찰했습니다. 같은 장소도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고려해 오전과 오후로 나눠 촬영했고, 촬영 지점은 GPS 정보로도 남겼죠. 이렇게 모은 이미지 색값은 인쇄용 색 체계인 CMYK로 정리한 뒤, 다시 생활의 언어로 이름 붙였습니다. 처음 눈여겨본 그 빛바랜 고추장 통의 노랑도 그렇게 기록됐습니다. CMYK 값으로는 ‘파랑(C)=27, 자주(M)=27, 노랑(Y)=71, 검정(K)=0’이었고, 청년들은 그 색을 ‘안매운노랑고추장통색’이라 불렀죠. 숫자로 정리하면서도 그 색이 주는 감각은 놓치지 않으려 했던 셈입니다.
그 결과 꽃동네의 색은 단순한 인상을 넘어 비교 가능한 자료가 됐습니다. 막연한 분위기로만 여겨지던 ‘빛바랜 마을색’이 좌표와 수치, 이름을 가진 기록으로 바뀐 거죠. 청년들이 붙인 이름도 흥미로웠습니다. ‘안매운노랑고추장통색’, ‘덧칠된 수영장색’, ‘메로나에 콜라 탄 색’처럼요. 정량화된 데이터와 생활의 언어가 함께 놓이자, 꽃동네의 색은 차갑게 분류된 정보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마을의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마을의 자료가 됐습니다. |
|
|
② 골목에 남은 이름들, 동네의 시간표가 되다 |
|
|
2024년 10월, 의정부시 금오동 ‘꽃동네’에서 ‘프로젝트 산장’ 등 청년들이 사라졌거나 불이 꺼진 상점 간판의 글자체를 본뜬 스텐실 틀을 대고 고압 세척으로 바닥의 먼지와 때를 걷어내 글자 형태를 드러내는 작업을 했다. 새로 덧칠하는 대신 ‘닦아냄’으로 흔적을 되살린 기록 방식이다. 프로젝트 산장 제공. |
|
|
색을 채집하던 청년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간판’으로 옮겨갔습니다. 외벽의 색이 동네의 시간을 보여준다면, 간판은 이 골목에서 어떤 가게와 생활이 이어졌는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었기 때문입니다.
폐업한 뒤에도 떼어지지 않은 채 글자가 바래고 가장자리가 깨진 간판이 남아 있었습니다. 밤이 되어도 더는 불이 켜지지 않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간판도 있었죠. 이런 간판들은 꽃동네의 변화를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행정 기록에는 ‘폐업’ 한 줄로 남을지 몰라도, 골목에 남은 간판은 그 자리에 어떤 가게가 있었고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이어왔는지를 훨씬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청년들에게 간판은 낡은 물건이 아니라, 마을의 시간을 새긴 하나의 나이테처럼 읽혔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가게의 상호를 알리는 기능을 잃은 ‘죽은 간판’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간판을 촬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도 서비스의 로드뷰 기능을 활용해 2011년 이후의 골목 풍경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유치원과 연탄집, 미용실, 동네 아이들의 사랑방이었던 미술학원 같은 장소의 간판을 하나씩 다시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간판과 화면 속 과거의 간판을 함께 모으며, 골목에 남아 있던 글자의 형태도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은 간판 사진 속 글자의 모양을 하나씩 추려내 서체 도안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한때 골목에 걸려 있던 가게 이름의 글씨를 다른 방식으로 불러낸 셈이었죠. 그때 활용한 방식이 스텐실이었습니다. 보통 벽에 글자를 남길 때는 페인트를 칠하지만, 청년들은 그 반대의 방법을 택했습니다. 고압 세척기로 벽에 쌓인 먼지와 때를 걷어내는 방식이었죠. 스텐실 틀을 대고 물줄기를 쏘면 글자 부분만 주변보다 밝게 드러나고, 한때 그 자리에 있었던 이름들이 잠시 다시 나타납니다. 새로 쓴 것이 아니라, 벽에 쌓인 시간의 층을 닦아내며 사라진 간판의 글씨를 드러낸 셈입니다.
색이 마을의 표정을 기록했다면, 간판은 그 골목에서 불리고 사라진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관심이 끊긴 장소는 조용히 지워지기 쉽지만, 이렇게 닦아내고 기록하는 일은 마을의 변화가 끊기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또 하나의 마을데이터가 됐습니다.
|
|
|
‘아름다운 꽃이되기’, ‘소소하고 확실하게’, ‘사는게 꽃같네’. 꽃동네 청년들은 옛 간판의 글자를 스텐실로 옮겨, 지워진 줄 알았던 골목의 이름들을 다시 읽히게 했다. 프로젝트 산장 제공. |
|
|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는 행정 데이터만으로는 담기지 않는 마을의 변화와 생활의 결을 주민이 직접 기록하고 축적할 수 있도록, 주민 주도의 마을데이터 아카이빙과 활용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경기도 마을공동체 데이터 아카이브 누리집 갈무리. |
|
|
꽃동네의 실험은 여기서 한 번 더 확장됩니다. 청년들이 보여준 건 단지 흥미로운 기록 작업이 아니라, 주민이 자기 동네를 직접 읽고 자료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이었죠. 바로 그 지점이 마을데이터를 오래 고민해온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의 시선과 맞닿았습니다. 센터는 행정이 정리한 통계와 공공데이터만으로는 마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봐왔습니다. 대신 주민과 활동가가 직접 걷고 관찰하며 모은 기록, 말하자면 마을이 스스로 남기는 ‘자기 자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센터는 공공데이터와 지역 이슈 자료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정보를 만들고, 다양한 마을데이터를 발굴하고 아카이빙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그 고민은 2025년 ‘마을데이터 챌린지’라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습니다. 경기도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의정부 청년 기획자들과 함께 진행한 이 프로그램에는 경기도의 마을활동가와 청년단체 회원 59명이 참여했죠. 참가자들은 3일 동안 꽃동네를 직접 답사하며 ‘나만의 데이터’를 모았고, 이를 다른 자료와 연결해 커뮤니티 매핑과 시각화 작업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렇게 모두 13건의 마을데이터 콘텐츠가 만들어졌습니다.
눈에 띄는 건 이 챌린지가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장면들에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의정부의 은행나무 가로수를 따라 도시의 ‘노란 선’을 읽었고, 누군가는 징검다리의 위치와 흐름을 기록했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골목의 형태와 교통사고 지점을 겹쳐 사고 위험이 높은 구간을 드러냈죠. 흥선동 교차로의 유동성을 관찰하거나 생활권별 카페 패턴을 정리한 작업도 나왔습니다.
경기도가 마을데이터에 꾸준히 주목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말로만 “이 동네가 이렇다”고 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주민이 직접 본 장면을 기록과 지도로 바꾸는 순간 마을은 훨씬 또렷하게 읽히기 때문이죠. 꽃동네의 빛바랜 색과 남겨진 간판이 그랬듯, 마을데이터 챌린지는 평소 감으로만 지나치던 동네의 표정을 기록으로 모아 서로 비교하고 나눌 수 있는 자료로 바꾸는 자리였습니다.
|
|
|
마을데이터라는 말은 처음엔 조금 막연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뜻을 풀어보면 의외로 분명하죠. 이미 있는 행정 통계와 공공데이터를 우리 생활권에 맞게 다시 읽는 일, 그리고 주민이 직접 걷고 관찰하며 새로운 기록을 쌓는 일을 함께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마을데이터는 단지 새로운 데이터를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숫자를 마을의 눈으로 다시 해석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 차이는 현장에서 꽤 중요합니다. 행정 통계는 보통 시·군·구 단위로 묶이고, 세밀해도 읍·면·동 수준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생활권은 그보다 훨씬 더 작고 촘촘합니다. 같은 동네 안에서도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위기가 달라지고,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자리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자리가 나뉘니까요. 그래서 행정이 정리한 숫자만으로는 동네의 세밀한 결이나 생활의 밀도를 충분히 읽어내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마을데이터는 크게 두 갈래에서 만들어집니다. 하나는 공개된 통계와 공공데이터를 우리 마을의 크기에 맞게 다시 잘라보고 해석하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통계 바깥에 있던 풍경을 직접 기록해 자료로 남기는 일이죠. 골목의 표정, 빛바랜 외벽의 색,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가게의 이름, 자주 걷는 길과 머무는 자리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결국, 마을데이터는 행정의 숫자와 주민의 감각이 만나는 자리, 이미 있는 자료를 다시 읽는 일과 아직 없던 자료를 새로 만드는 일이 겹쳐지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
📝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빛바랜 색도 오래된 간판도 사람들이 자주 머무는 자리도 누군가 기록하기 전까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뿐입니다. 하지만 한 번 자료가 되고 나면 마을은 조금 더 또렷하게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하죠. 여러분 동네의 표정은 무엇으로 남겨두고 싶으신가요?😀스리슬쩍 알려주기를 통해 생각 나눠주세요. 소중하게 읽고, 천천히 고민하며 더 나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
|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speakers@hani.co.kr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 6 한겨레신문사 3층 02-710-0070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