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액션플랫폼 베이크
“커뮤니티가 조직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요?”
비영리 조직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해보셨을 거예요. 후원자는 늘 새로 모집해야 하고,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도 참여자와의 관계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많은 조직이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 앞에서 막막함을 느낍니다.
지난 12월5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이 질문에 대한 실험과 답을 나누는 자리가 열렸습니다. 소셜액션플랫폼 베이크(VAKE)의 ‘액션 부스터’ 2기 결과 공유회였는데요. 100여명이 모일 정도로 행사장의 열기는 뜨거웠어요.
베이크는 출발점이 특별합니다. 2017년 국제구호개발 단체인 월드비전의 사내 프로젝트로 시작해 2023년 독립 법인으로 분사한 ‘소셜밸류랩’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이거든요. 국내 비정부기구(NGO)에서 사내벤처가 별도 법인으로 분사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해요! 베이크는 Value와 Make의 합성어로, 누구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액션을 기획하고 참여자를 모아 실행할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액션 부스터’는 베이크가 소규모 비영리 조직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각 조직의 미션과 연결된 참여형 활동을 기획하고, 지속가능한 지지자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도록 워크숍과 멘토링을 지원하죠. 올해 2기에는 총 10개 조직이 참여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실험에서 출발한 커뮤니티부터, 방 한 칸을 나누는 청년 주거 커뮤니티, 과일을 함께 먹기 위해 모인 식문화 커뮤니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모였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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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5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베이크와 임팩트얼라이언스가 공동주관한 <Community as the future: 새로운 임팩트모델의 가능성> 행사가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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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크를 운영하는 소셜밸류랩 이은희 대표는 비영리 시장의 굳어진 패러다임을 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다양한 혁신적 시도는 많지만, 중심 메커니즘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기관이 주도하고, 모금이 중심이 되는 구조요. 한정된 자원을 두고 조직 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요.”
후원자의 역할도 문제예요. 많은 비영리 조직이 후원자를 ‘문제 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돈을 내는 ATM’으로 바라본다는 거죠. 후원자 규모가 커질수록 관리 비용도 함께 커집니다. 정보는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경험의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면서 서로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는 관계가 되어갑니다.
베이크가 말하는 ‘커뮤니티’는 조금 다릅니다. 기존에는 “몇 명이나 모았느냐”가 중요했어요. 그리고 모인 사람을 붙잡아 두기 위해 리워드가 필요했죠. 하지만 베이크가 추구하는 커뮤니티는 “사람들이 왜 모였는지”를 이해하는 가치 중심의 연결입니다. 참여할수록 가치가 커지는 구조라고 할 수 있죠. 이 대표는 이를 “화석 연료에서 태양광 모델로의 전환”에 비유했어요. 계속 석탄을 넣어야 유지되는 구조가 아니라,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지속가능한 구조로 가야 한다는 거죠.
그는 커뮤니티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보이는 자산’이라고 강조해요. 그렇다면 커뮤니티는 과연 조직을 어떻게 먹여 살릴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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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선 모두의연구소 다오랩 랩장이 ‘커뮤니티, 미래 조직의 답을 찾다’는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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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트를 맡은 한재선 모두의연구소 다오랩 랩장은 연쇄 창업가입니다. 넥스알, 퓨처플레이, 그라운드엑스를 창업·공동 창업하며 다양한 조직을 경험해왔죠. 그런 그가 왜 ‘커뮤니티’에 주목하게 됐을까요?
“주식회사를 더 하고 싶지 않았어요. 회사가 정말 세상에 도움을 주는지,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가 찾은 대안은 DAO(탈중앙화 자율조직)였습니다. 대표도 리더도 없이, 이해관계자가 모여 규칙을 프로그램으로 정하고 투표로 의사결정하는 조직이에요. 2021~2022년 한때 많은 DAO가 등장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해요. 모든 활동이 토큰 (보상) 기반이다 보니, 내적 동기가 외적 보상 때문에 훼손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토큰 가격이 내려가면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등 부침을 겪었다고요.
한재선 랩장이 다시 주목한 것은 ‘커뮤니티’, 특히 느슨한 연결의 힘이었습니다. 인상적인 건 다오랩의 리트릿 사례였어요. 올해 하반기 행사는 3명을 선정해 전적으로 행사 진행을 맡기니 나머지 구성원들은 뒷짐 지고 기다렸다고요. 그런데 지난 상반기에는 전혀 달랐다고 해요. 중심이 되는 사람을 따로 선정하지 않고 행사를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니 처음엔 모두 조용하더니 일주일이 지나고 난 뒤 한 명씩, “숙소 잡는 건 제가 할게요”, “저는 카풀 가능합니다”, “프로그램 구성은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한 명씩 필요한 역할을 맡았다고요. 한재선 랩장은 “준비 과정 자체가 재미 요소가 되면서 참여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사실 많은 조직이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를 원합니다. 자발적 기여가 일어나려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직이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개입하며 기회를 막아버리곤 하죠.
기여를 측정하는 방식도 달랐어요. 점수를 매기면 형평성 논란 등 부작용이 생기더래요. 그래서 다오랩은 ‘감사 포인트’를 도입했습니다. 도움받은 사람에게 포인트를 주는 방식인데요. 그 덕분에 눈에 띄게 활동하진 않지만, 감사 메시지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고요. 한재선 랩장은 이를 위해 “극단적인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어요. 다오랩은 모든 정보가 공개돼 있습니다. 숨겨진 정보가 없다는 확신이 커뮤니티를 안정시킨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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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방은 집을 함께 나누며,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힘을 쌓아가는 라이프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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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2018년, 대학생 두 명이 함께 살려고 얻은 쓰리룸 빌라였습니다. 나그네방을 운영하는 유하영 씨는 남은 방 한 칸을 보며, “이건 우리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에게 방을 내어주기 시작했고, 7년 동안 40명 넘는 나그네가 머물다 독립했습니다.
운영 원칙도 독특합니다. 보증금과 운영비는 운영자가 부담하고, 나그네는 자기 수입의 10%를 책임비로 냅니다. 왜 10%냐고요? 서울에서 주거비가 소득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10%는 기반을 쌓으면서도 감당 가능한 적정 비용이라고 봤다고요.
생활 원칙도 분명해요. 각 방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하되, 공용 공간의 물건은 내 것이 아니어도 사용할 수 있고, 냉장고 음식은 내가 사지 않아도 먹을 수 있습니다. 유하영 씨는 “기숙사에 살면 음식마다 ‘도둑질하지 마’라고 쓰여 있잖아요. 내 음식에는 이름 붙이고요. 저희는 그러지 않길 바랐어요. 우리가 집에서 냉장고 열 때는 그런 고민하지 않고 그냥 꺼내 먹잖아요”라고 덧붙였습니다.
머무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짧게는 보름, 길게는 1년 8개월까지 나그네들은 나그네방에 머물렀습니다. 다만 ‘나보다 더 이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기꺼이 방을 내어준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여기엔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독립을 준비하는 공간이라는 뜻이 담겨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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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방은 올해 9월말부터 경북 안동에 나그네방을 만드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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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 머물렀던 나그네는 대출받아 전셋집으로 독립했다고 해요. 나그네방의 큰 보람이자 자랑이라고요!😊 그가 독립하면서 남긴 편지에 이런 말이 있었답니다. “받은 마음 잊지 않고 되돌려주면서 살아갈게요.” 유하영 씨는 이게 나그네방이 요청하는 단 한 가지라고 했어요. 조건 없이 받은 사랑을 어딘가에 흘려보내 달라는 것 말이죠. 그렇게 여러 사람의 연결 위에 세워진 나그네방은 지금 안동에 새 공간을 준비 중입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 누구나 한 번쯤 나그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환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좀 더 든든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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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밭’이 운영하는 ‘즉흥과일&채소클럽’은 여럿이 함께 모여 제철 과일과 채소를 맛보는 식경험 프로그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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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학생 소모임이 벗밭의 시작입니다. “사과 한 봉지를 사면 일주일 내내 사과만 먹어야 한다”는 자취생 친구의 말이 계기였죠. 혼자 살더라도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제철 과일과 채소를 함께 먹는 모임, 생산지를 찾아가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요.
함께 먹으면 뭐가 좋을까요? 혼자서는 수박 한 통을 사서 다 먹기 어렵잖아요. 5명만 모여도 그 수박이 만만해집니다. 혼자면 한 가지 사과를 먹기도 벅찬데, 같이 모이면 다양한 품종을 맛볼 수 있어요. 벗밭의 백가영 대표는 “혼자일 때는 어렵던 일도, 함께하면 오히려 풍성해질 수 있다는 걸 식탁 위에서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올해 성북문화재단과 함께 진행한 ‘성북밀로 라이프클럽’ 사례를 들며 커뮤니티에는 기여감과 연결감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빵과 국수를 매개로 동네 골목을 탐방하고,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주민 참여형 커뮤니티 프로그램이에요.
모임 마지막 날, 벗밭은 케이터링을 직접 준비하는 대신 참여자들에게 “성북동 맛집에서 음식을 배달해주실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30분 만에 15명이 참여하셨다고요! 모임이 가능할지 의심하는 대신 믿음으로 기다린 덕분이었죠. 그렇게 각자 주문한 음식을 소개하며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고요. 1기 참여자 3명이 2기 모임에선 호스트가 되어 함께 운영했다고 해요. 전체 호스트 6명 중 절반이 기존 참여자에서 비롯됐으니 빵과 국수가 만든 인연이 굉장하죠!😲
백가영 대표는 “커뮤니티를 한다는 건 결국 친구가 되자는 말인 것 같다”고 말해요. 친구가 되면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용기 내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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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밭은 서울 성북동의 국수와 빵을 매개로 일상을 기록하는 커뮤니티 ‘성북밀로 라이프클럽’을 기획 및 운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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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팀의 발표가 끝나고 ‘이그나이트’ 세션이 열렸습니다. 20장의 이미지가 15초 간격으로 자동 전환되고, 발표자는 5분 안에 이야기를 마쳐야 하는 방식이죠.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제한된 시간에서 핵심을 압축해야 하기에 발표자의 생각과 고민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주제는 ‘내 커뮤니티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그리고 다시 봄’이었는데요. ‘ 유스보이스’ 임정은 매니저, ‘ 일하는학교’ 이정현 이사장, ‘ 소셜임팩트뉴스’ 염지현 편집장, ‘ 우물가 The Well’ 이현순 활동가, ‘ 시스플래닛’ 오윤선 대표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 고립 청년, 어린이 기자단, 엄마들의 커뮤니티, 발달장애 예술가까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커뮤니티를 일궈온 다섯 사람이 자신들의 계절을 이야기했습니다.
다섯 이야기의 공통점은 분명했어요. 커뮤니티가 계절의 변화마냥 순환하고, 그 안에서 사람도 함께 자란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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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조직의 미래는 결국 사람의 연결에서 시작된다” 이번 행사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방식은 다르더라도 ‘사람’과 ‘연결’이라는 키워드는 끝까지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스피커스도 늘 숫자에 연연하거든요. 구독자는 늘었을까, 오픈율은 올랐을까 하고요. 그런데 이번엔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됐어요.
“우리는 구독자와 어떤 가치를 나누고 있을까?”
그 고민을 품고, 스피커스는 짧은 겨울방학에 들어갑니다. 연말 따뜻하게 보내시고, 2026년 2월에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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