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사람과디지털포럼
지난달 25일 열린 2025 사람과디지털포럼에서 가장 인상적인 강연은 로런스 레시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강연이었습니다. ‘인공지능 (AI)과 민주주의 : 새로운 위협과 우리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20분간 펼쳐진 온라인 강연에 300여명의 청중들은 완전히 몰입했어요.
로런스 레시그 교수는 저작권 공유 운동인 크리에이티브커먼즈를 만든 저명한 법학자이자 미국의 진보적 정치개혁 운동가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 새로 제기되는 법적 쟁점부터 민주주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혁신적 활동을 이어온 실천적 학자입니다.
그럼 로런스 레시그 교수를 만나러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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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제4회 사람과디지털포럼에서 기조강연하는 로런스 레시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김영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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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그 교수를 상징하는 것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예요. 미키마우스법(1998년, 소니 보노 저작권 연장법) 위헌소송 패배가 계기가 되었어요. 미키마우스법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기존 50년에서 70년으로(개인), 75년에서 95년으로(기업) 연장한 법입니다. 세계적인 저작권법 전문가인 레시그 교수는 1928년 디즈니가 ‘스팀보트 윌리(Steamboat Willie)’에서 미키마우스를 처음 선보였던 것처럼, 과거에는 기존 작품을 자유롭게 차용하고 변형할 수 있었던 창작 환경이 현재는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하며 2003년 위헌소송을 제기했다가 패배했어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어떤 권리를 부여할지 직접 선택하도록 한다면 지식과 문화의 공유, 민주적 소통에 기여할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어요. 집단 지성 플랫폼인 위키피디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저작권법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저작권자가 스스로 일부 권리를 포기해 저작권을 약화시켜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창조적 발상”인 셈이죠. 레시그 교수는 2015년 ‘개혁 대통령’을 표방하며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어요. 최고의 저작권법 전문가에서 정치개혁으로 전환한 것이죠. 그 이유는 완벽한 논리와 증거만으로 의회에서 저작권법 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라고 합니다. 기업이 정치자금을 무기로 의회를 좌우하고 공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접근조차 어려운 근본적 상황을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리 법 논리를 들이대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요.
2015년 레시그 교수는 대선 출마를 결심했는데,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해 정치자금 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삼아 TV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토론회에서 배제되자 곧 사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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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그 교수는 제4회 사람과디지털포럼의 특별기조강연에서 인공지능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브레인 해킹’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레시그 교수는 어떤 맥락에서 브레인 해킹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을까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인간의 주의력을 조작하는 것을 빗댄 표현인데요.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참여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작동합니다. 플랫폼 기업들이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최대한 플랫폼에 오래 머물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인공지능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추천합니다. ‘브레인 해킹’은 식품 업계에서 사용되는 ‘바디 해킹’이라는 개념과 비슷합니다. 식품을 만들 때 소금, 설탕, 지방 함유량을 잘 배합해서, 사람들의 저항감을 극복해 계속해서 식품이 판매되도록 하는 방식인데요. 이로 인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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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3 내란 사태, 그리고 1·19 서부지법폭동사태는 ‘부정선거 음모론’과 ‘반중혐오정서’ 등을 유포하는 극우 유튜브, 그리고 이를 신봉하는 ‘뇌썩음’과 관련이 깊습니다.
뇌썩음은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인지 과정에서 자원을 최소화하는 특성으로 인해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내 편과 적을 명확히 구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인지적 한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그 핵심에 알고리즘이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러한 인간의 인지적 특성을 활용해 플랫폼에 최대한 오래 묶어두려고 하는 ‘관심경제모델’을 구축했습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실리콘밸리 천재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연구”하고 우리는 집중력을 댓가로 소셜미디어를 무료로 사용하면서 중독에 이르게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 기술로 우리의 주의력을 약탈해가고 집중력 위기가 심해지면 민주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미디어 사회학자이자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인 제이넵 투펙치는 “플랫폼의 수익 모델은 민주적 논의보다 화제성을 추구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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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그 교수는 닉슨 대통령 시절과 트럼프 시절의 지지율 변화를 비교하며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에는 공화당원과 민주당원 모두에서 닉슨에 대한 지지율이 동시에 하락했는데, 트럼프 시기에는 두 차례 탄핵 위험에도 불구하고 당파별 지지율이 거의 일정했습니다. 2021년 1월 트럼프 패배에 분노한 지지자들이 ‘스톱 더 스틸 (Stop The Steal)’을 외치며 국회의사당을 점령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를 믿고 지지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중 다수가 교육수준이 높았다는 사실입니다.
레시그 교수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버블에서 살며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현실에서 살고 있으며, 혐오로 가득 찬 버블에서 점점 더 극단화되고 분노에 차며 무지해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포스트트루스’를 쓴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의 ‘탈진실 현상 (post-truth)’의 인식과 유사합니다. 소셜미디어는 같은 생각을 지닌 집단의 의견, 뉴스만을 보게 하는 ‘필터 버블’로 인해 객관적 사실은 사라지고 저마다의 조각난 작은 현실들만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명백한 사실조차 거짓으로 치부하게 될 때 사회적 합의가 어려워지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론장이 붕괴할 수 있습니다.
레시그 교수는 페이스북(현 메타)의 앤드류 보즈워스 임원의 2020년 발언을 인용하며, 빅테크 기업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참여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익이지만 공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모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해야 한다면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다. 세계적 기아를 끝내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희생해야 한다면 이 역시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단지 몇몇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기 위해 민주주의를 훼손해야 한다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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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그 교수는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은유로 들며 “외계인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우리를 침공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AI의 해로운 영향력으로부터 격리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시민의회(Citizen Assemblies)를 통한 숙의 방식입니다. 인공지능의 영향으로부터 안전한, 보호된 환경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 입법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보다 보호된 공간에서 숙의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 대표들이 인공지능의 영향에서 벗어난 보호된 환경에서 숙의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인데, 아이슬란드가 집단지성을 통해 새 헌법을 제정하고, 아일랜드는 매년 시민의회를 통해 의회가 채택하지 않은 정책들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예시로 듭니다. 프랑스도 기후변화 대응 정책 등에서 시민의회가 의회에서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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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집 DELIBERATIONS.US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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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그 교수는 미국의 정치적 이슈에 대한 무당파적이고 전국적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DELIBERATIONS.US라는 플랫폼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소규모의 다양한 그룹에서 정보에 기반해 대화하고 토론하며, 의견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휴대폰, 태블릿, 노트북, 데스크톱 모든 기기에서 접근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 기반 도구를 활용해 대의민주주의를 개선하고,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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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그 교수는 독창적인 강연 스타일로도 유명합니다. 일각에서는 “레시그 방법(Lessig Method)”로 부른다고 합니다. 한 슬라이드에 한 단어, 한 구문, 또는 한 이미지만 넣는 극도로 미니멀한 방식을 사용하며 애니메이션 프레임처럼 빠르게 진행됩니다. 각 슬라이드가 하나의 개념을 나타내며, 전체적으로는 완전한 스토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포럼에서도 이러한 강연 스타일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보수색채가 강해 펜실베이니아 청소년 공화당원으로 활동하며 공화당 정치인의 길을 꿈꿨는데, 케임브리지에서의 철학 연구를 하면서 진보주의자로 전향했다고 합니다. 그의 상관이었던 두 명의 판사 모두 보수주의자였지만 뛰어난 능력을 인정해 이념과 관계없이 그를 선택했고, 한 명은 레시그 교수를 “그의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법학 교수”라고 평했다고 전해집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를 만든 윤종수 사단법인 코드 이사장(법무법인 광장 변호사)과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열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20주년 파티에는 줌으로 인사를 전할 만큼 한국에 관심이 많고, 한국의 역동적인 문화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책 집필 작업 때문에 한국에 직접 오지 못했지만, 곧 한국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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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로런스 레시그 교수의 강연을 듣고 나니 ‘브레인 해킹’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AI 알고리즘이 우리의 뇌를 어떻게 해킹하고 있으며, 또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지 말이죠.
스피커스는 7월 한 달 동안 제4회 사람과디지털포럼을 찾은 마티아스 스필캄프 알고리즘워치 공동창립자, 오드리 탕 대만 사이버대사, 그리고 ‘혐오를 넘어 다양성과 자유로운 참여’를 위한 논의 내용을 차례로 다룰 예정입니다. AI 알고리즘이 우리의 주의력을 약탈하고 극단화를 부추기는 시대, 진정한 민주적 소통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스피커스와 함께 AI 시대 민주주의의 위기와 희망을 탐구해보는 시간이 되길요!😊
스리슬쩍 알려주기를 통해 생각 나눠주세요. 소중하게 읽고, 천천히 고민하며 더 나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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