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조직은 무엇을 바꾸는가’
돌봄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요?
어린이집, 요양병원과 같은 돌봄 기관이 생각날 수도 있고, 돌봄에 대한 감정이나 경험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출생·고령화 시대라 불리는 요즘, 돌봄은 중요한 화두 중 하나입니다. 아이돌봄부터 어르신돌봄, 반려견돌봄, 나아가 자기돌봄까지 다양한 양상의 돌봄이 우리 삶의 곳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힘들고 어려운 일, 혹은 각자의 가정에서 해결하는 개인적인 일로 여겨져 왔죠.
돌봄 당사자와 돌봄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돌봄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이를테면 돌봄은 피하고 싶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편하게 얘기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요. 돌봄의 사전적 의미는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행동이라 합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따뜻한 안부인사를 건네는 것도 돌봄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의 돌봄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스피커스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사람들이 모인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열린 <돌보는 조직은 무엇을 바꾸는가> 세미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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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열린 DEI LAB 세미나 '돌보는 조직은 무엇을 바꾸는가'에 참석한 연사들과 청중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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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저출생·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기업 간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있어요. 2023년 기준 50인 미만 사업장의 육아휴직 후 고용유지율은 68.4%로 300인 이상 대기업(84.9%)에 견줘 낮은 수준이고, 5년째 제자리걸음 중이죠. 지난해 육아 휴직자 13만2535명 가운데 30인 미만 기업 소속은 31.8%에 불과하다고 나타났어요.
정부는 올해부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출산휴가, 육아휴직으로 업무 공백이 있을 때 대체인력을 고용하거나 파견근로자를 활용할 경우 월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현장의 어려움은 여전해요. 대기업의 경우, 육아 휴직자의 업무 공백을 큰 조직 규모와 시스템의 지원으로 메울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대체인력의 고용, 재교육 등 부가 비용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큽니다. 중소기업에서는 대체인력이 숙련된 기존 직원의 업무 공백을 완벽히 메우기 어려워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꺼려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등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을 임팩트 지향 조직이라고 해요. 이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 속하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임팩트 지향 조직들이 직원들의 돌봄을 보장하고 실천하는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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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가족이나 어린 자녀를 돌보는 동료를 배려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오현아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활동가의 말입니다.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였던 오현아 활동가는 “돌봄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가는 과정”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돌봄이 이뤄지는 공간이 대부분 개인의 집이고,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 때문입니다. 어린 나이부터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는 영케어러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드러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올해 3월부터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지만, 가장 어려운 점이 지원대상인 영케어러를 발굴하는 일입니다.
돌봄이 더는 개인적인 것이 아닌 사회에서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오 활동가는 이때 돌봄이 비용과 부채가 아닌 의미 있는 삶의 가치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의 감정과 피로를 민감하게 인지하고,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과 적응력이야말로 돌봄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죠. 이런 돌봄 감각을 가진 구성원들도 조직의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어요.” 오 활동가가 꼽은 돌봄 조직의 기반은 첫째, 돌봄이 무엇인지 구성원들이 함께 이해하고, 둘째, 돌봄을 일상의 주제로 편하게 얘기하고, 셋째, 돌봄 경험을 자산으로 인식하는 조직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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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조직의 기본 요소. 오현아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 활동가 발표자료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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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돌보는 조직의 첫걸음, 돌봄 인식 전환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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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극복을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일·가정양립 지원정책이죠. 정부는 육아휴직, 탄력근무제, 보육시설 확충 등 정부는 일하는 부모의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정책을 내놓고 있어요. 하지만 임팩트 지향 조직과 같이 작은 규모의 기업은 정책 지원을 받기에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조직들이 돌봄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요?
임혜빈 광운대 교수(산업심리학)은 ‘일터의 자원관리 가능성’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일터의 자원관리 가능성’이란 업무량이 많아질 때 동료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인식과 업무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재량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일터에서 가능하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일터의 자원관리 가능성이 클수록 직무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워킹맘들은 업무 재량권이 높고, 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클수록 일과 가정에서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양육에 대한 죄책감도 낮아지죠. 낮은 양육 죄책감은 업무 몰입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워킹맘의 양육죄책감과 경력몰입’ 연구를 진행한 임 교수의 설명입니다.
이수란 서울사이버대 교수(군경상담학)도 육아휴직제도의 명칭을 ‘육아몰입제도’로 바꾼 기업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회사가)육아휴직은 일을 중단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일과 삶의 병행을 위해 육아에 몰입하는 제도로 인식하도록 제도명을 바꾼 거예요. ‘돌보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돌봄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직원의 인식을 바꾸는 작은 실천으로 시작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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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양육죄책감과 경력몰입’ 연구를 진행한 임혜빈 광운대 교수(산업심리학)가 발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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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시설을 갖추는 것 또한 작은 조직에서는 쉽지 않아요. 어린이집 부지 마련부터 건물 유지, 선생님들의 고용까지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큰 부담이거든요. 실제로 현행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의 사업장은 직장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돼 있죠. 규모가 작은 대부분의 소셜벤처와 사회적기업은 영유아보육법의 적용을 받지 않지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직원들의 양육 지원은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죠.
서울 성동구에 있는 모두의숲 직장공동어린이(모두의숲)집도 사단법인 루트임팩트 직원들의 아이돌봄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선종헌 루트임팩트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이니셔티브 팀장은 모두의숲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어요.
“설립 초 함께 했던 직원들이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며 육아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안정적으로 직원들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같은 조직들이 모여 규모의 경제를 통해 해결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모두의숲은 서울 성동구에 위치해 있으며, 2호선 뚝섬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어요. 3층 단독건물로 이뤄진 이곳에서 현재 26명의 아이와 10명의 교사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죠. 모두의 숲 운영 비용은 하나금융의 후원과 컨소시엄 계약에 참여한 임팩트 지향 조직들이 함께 부담하고 있어요. 회원 조직들은 재정적 지원 외에도 어린이집 운영과 관련한 주요 의사결정에 함께 참여해요. 11개의 회원 조직으로 시작한 모두의숲은 현재 19개로 참여가 늘었어요.
선 팀장은 임팩트 지향 조직들이 돌보는 조직이 되기에 훨씬 유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문제에 공감하고, 다양한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임팩트 지향 조직이 (돌봄조직이 되기에) 훨씬 유리하다고 봐요. 돌봄조직은 복지라는 한정된 자원을 구성원이 나눠 갖는 게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들의 삶의 맥락을 기업이 포용하고 지지해준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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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임팩트가 대표 운영하는 모두의숲 직장공동어린이집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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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4월 서울 여의도 국회소통관에서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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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케어러(Young Carer)’, 우리말로 ‘가족돌봄청년’으로 불리는 이들은 질병, 장애 등을 가진 가족을 부양하는 만14~34살의 청소년 또는 청년을 말해요. 2020년 기준, 약 15만명으로 추정됩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가족돌봄청년들은 1주일 평균 21.6시간을 돌봄에 할애하고 평균 돌봄 기간이 3년 10개월에 달한다고 하네요.
가족돌봄청년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회적 고립입니다. 가정에서 자연스레 맡게 된 돌봄의 책임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기댈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이들은 일반 청년보다 삶의 만족도가 2배 이상 낮고, 우울감도 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는 올해 3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건강, 주거, 학업과 취업 지원 등 다양한 돌봄 지원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법의 지원대상은 고립·은둔 아동을 포함한 만14~34살의 가족돌봄청년입니다.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지원이 제도화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내용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직접 지원은 늘어났지만, 이들이 돌보는 아픈 가족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해 돌봄 부담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거죠.
지원대상의 나이를 만14~34세로 제한한 것도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예요.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13세 미만 가족돌봄아동을 파악한 결과, 2021년 기준 전국에 최소 1만7천여명에서 최대 3만1천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대 3만명 이상의 아동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말이에요.
우리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이 돌봄의 모습과 형태도 같지 않습니다. 가족돌봄청년의 경우처럼, 하나의 정책으로 모든 돌봄을 보장하기는 어렵습니다. 돌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한 돌봄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들이 필요한 지원방안을 사회가 함께 고민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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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누구나 한 번쯤은 살아가며 돌보거나 돌봄 받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가벼운 감기몸살을 앓을 때에도 혼자여서 서러웠던 경험은 한 번쯤 있지 않나요?
때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아프고, 아픈 우리를 돌봐줄 타인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일터도 마찬가지겠지요. 개인의 이러한 취약함과 의존성을 이해하고,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문화가 돌봄 조직과 나아가 돌봄 사회가 되는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늦은 밤까지 선거 결과 확인하시느라 밤을 지새운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오늘 아침 마주치는 옆집 이웃, 옆자리의 회사 동료, 친구에게 따뜻한 안부 인사로 하루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보살피는 것이 돌봄의 첫걸음일 수도 있으니까요.
스리슬쩍 알려주기를 통해 생각 나눠주세요. 소중하게 읽고, 천천히 고민하며 더 나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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