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
아빠 4명, 엄마 15명.
‘라테파파란 단어가 생길 정도로 남성의 육아 기여도가 높다는데, 과연 어느 정도일까?’란 궁금증에 스톡홀름 공항에 내려 시내에 짐을 맡긴 오전 10시부터 첫 인터뷰가 시작되는 오후 4시 전까지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라테파파의 숫자를 세봤습니다.
사실 6시간 동안 목격한 라테파파가 4명뿐이란 점은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엄마 홀로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경우가 15명이었으니 4분의1 정도입니다. ‘스웨덴은 이렇게 많은 아빠가 엄마만큼 육아에 참여한다’는 내용을 유아차를 끄는 엄마와 아빠의 숫자를 비교해 보여주려던 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평일인 목요일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일 낮에 아이와 함께 외출한 아빠가 한국과 비교해 많은 편이었네요. 서울에선 평일에 유아차를 끄는 아빠를 본 적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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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두 아이의 엄마인 안 카트린 욘손과 둘째 아들 파비앙이 반려견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손지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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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에서는 ‘육아 천국’으로 알려진 북유럽의 실상을 들여다봅니다. 특히, 스웨덴과 덴마크의 현장을 통해 이들 국가가 직면한 저출생 문제와 그에 대한 대응 방식은 어떨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북유럽의 모습은 실제와 얼마나 일치할까요. 현장을 살펴보며, 저출생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해보려 합니다. 북유럽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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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천국’이라 불리는 북유럽도 한국 저출생 문제의 ‘정답’은 아닙니다. 스웨덴 스톡홀름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우리도 아이를 점점 안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묵었던 에어비앤비 숙소의 60대 여성 호스트도 “내 딸도 그렇지만, 요즘 애들은 아이를 안 낳으려 한다”며 혀를 찼습니다.
실제로 스웨덴과 덴마크의 합계출산율도 낮아지고 있죠. 리비아 올라 스톡홀름대 교수(인구학)는 “북유럽도 젊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옛날엔 ‘평생직장’ 개념이 있었는데 지금은 제한된 기간에만 고용하는 형태가 많아져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면서 “미국의 ‘집중적 양육(intensive parenting)’처럼 일정 기간에 자녀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는 개념이 스웨덴에도 확산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숨막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상황과 꽤나 비슷하죠.
‘오답’ 없는 완벽한 나라는 없습니다. 북유럽 국가들도 전 세계적인 저출생 흐름을 따라가고 있죠. 가끔 한국의 공무원과 전문가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봐라, 북유럽도 출산율 떨어지고 있는데 그들의 복지정책도 소용이 없다”라고요. 스웨덴이라고 해서 유아차를 끄는 아빠와 엄마가 ‘반반’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울에선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평일 낮 홀로 유아차를 끄는 아빠가 4명이나 눈에 띄었죠. 우리는 북유럽을 ‘정답’으로 삼을 필욘 없습니다. 그들도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그들에게 본받을 점을 찾아 한국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될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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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는 480일 동안 육아휴직이 유급으로 제공되며 부모가 공동으로 사용한다. 90일은 각 부모에게 할당되며 나머지 기간은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 아버지 모임은 꽤 흔한데 아빠들은 서로 만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출처: Magnus Liam Karlsson/imagebank.sweden.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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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온 기자님들은 대부분 덴마크가 무슨 정책을 펼치는지 위주로 취재하고 가세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 더 중요한 건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 같아요.”
덴마크에서 통역을 도와준 한국인 사장님은 처음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책과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북유럽의 정책들은 오랜 시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들어졌고, 이는 다시 그 나라의 문화와 인식에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국민의 문화와 인식 토대 속에 정책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육아휴직이 몇 개월이고, 급여는 얼마를 주는지보단 북유럽 사람들은 출산과 육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한국의 문화·인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인식의 저편엔 어떤 배경이 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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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가 느껴진 부분은 노동시간입니다. 출산·육아를 얘기하다 왜 갑자기 노동시간이냐구요? 일하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덴마크와 스웨덴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 37시간입니다. 한국(주 52시간)과 최대 15시간이 차이 납니다. 미취학 자녀가 있는 직원은 일반적으로 오후 2시30분∼3시쯤 회사를 나와 아이를 데리러 갑니다. 한국 근무 시간으로 보면 3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 같지만, 북유럽 근무 시간으론 30분 정도 일찍 나가는 수준입니다. 북유럽의 하루 근무 일과는 보통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3시∼3시30분이면 끝나기 때문이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정규 근무 시간은 한국으로 치면 5시30분쯤 퇴근하는 셈이네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0분 정도 직원이 육아를 위해 일찍 회사를 나선다고 하니 회사도, 동료 직원들도 이해합니다.
기업 문화 역시 한결 유연합니다. 오후 6시 ‘칼퇴’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의 회사 분위기와는 다르죠. 스웨덴에서 만난 워킹맘은 육아휴직을 시간 단위로 쪼개 썼습니다. 덴마크에서 만난 워킹맘들도 육아휴직을 여러 번 나눠서 사용했고,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30분 일찍 퇴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육아휴직을 무조건 길게 쓰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일하는 감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아이를 키우며 근무 시간을 유연하고 자유롭게 조정하고, 회사와 동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핵심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소득은 크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기존 급여의 80∼100%까지 보전됩니다. 급여는 국가재정과 기업이 모은 기금 등에서 지급됩니다.
반면, 한국은 ‘장시간 노동’이 미덕인 나라입니다. 칼퇴도, 연차도, 휴직도 눈치 보지 않고 쓰기 어려운 회사가 많죠. 최근에는 반도체 등 특정 업계를 중심으로 더 긴 노동시간을 허용해야 한단 논의마저 나옵니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번 포럼에서 “가부장적 기업 문화의 근간은 장시간 노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송 교수는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충성도가 높다고 여기는 문화에서 벗어나, 충분한 사랑과 애정으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부장제 기업 문화에서 벗어나 돌봄이 기반이 되는 사회로 가는 것의 근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짚었습니다. 윤자영 충남대 교수(경제학)도 “근로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하는, 근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의무를 기업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덴마크에서 만난 한 워킹맘은 이전에 한국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이미 한 차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나머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위해 한국인 상사에게 보고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한국인 상사가 그에게 눈치를 줬습니다. “너는 이미 한 차례 육아휴직을 썼잖아. 왜 또 휴직하려 하느냐”라고요. 워킹맘은 “여기는 덴마크고, 육아휴직을 쓸 권리가 있다”고 답한 후 당당하게 육아휴직을 썼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그가 회사로 복귀했을 때 별다른 차별은 없었다고도 했죠. 한국이라면 어땠을까요.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니 “그만두라”는 말을 듣거나, 복귀 후 기존 업무와는 전혀 다른 자리로 ‘보복 인사’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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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5일 서울 마포구 한 기업에서 직장맘들이 직장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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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같은 극도의 경쟁 사회에선 근무 시간을 단축하는 부모 역시 회사에서의 성취는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이는 대부분 여성의 부담이 될 것입니다. 저출생 추세를 획기적으로 반등하고 싶다면, 기존 제도만 일부 손질하고 합계출산율 0.01이 오르냐 마냐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감축과 소득 보전 등 사회구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일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애인을 만들겠습니까? 가족과 시간을 어떻게 가질 수 있나요? 친구들과의 시간은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당신도 잠을 자야 하고, 하루는 24시간밖에 없습니다. 평일은 5일이지만, 주말은 단 2일뿐이죠. 이런 시스템은 누구에게도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덴마크의 워킹맘에게 한국의 주52시간 근무제도와 제 노동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답변이 한국 저출생 문제의 핵심을 찌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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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라테파파를 찾아 나섰던 스톡홀름의 거리에서, 우리는 예상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모습 속에서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죠. 완벽한 해답은 없겠지만, 북유럽이 보여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노동문화에 있었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도를 손보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스피커스가 여러분들 곁에 더욱 생생하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의견을 스리슬쩍 알려주기를 통해서 전해주세요. 정성껏 읽고 고민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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